전공서적 불법복제 파일째 거래 만연
투자금 미회수에 출판사 수익성 악화
"무겁고 비싸"... 비대면 강의도 한몫
무인스캔방 증가 등으로 적발도 난항
"전공 책 PDF 구합니다. 사례는 아이스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이나 현금 4,000원 드립니다."
대학가가 일제히 개강하는 3월이면 어느 대학에서나 일어나는 불법 행위가 있다. 전공서적을 복제해 수업을 듣는 것으로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엄연한 불법이다. 과거엔 일부 챕터를 발췌해 복사하는 정도였지만, 기술 발전으로 이젠 문서 파일(PDF)을 통째로 거래한다.
신학기를 맞아 대학 온라인커뮤니티와 중고사이트에는 전공서적을 불법복제한 PDF 파일을 구하는 게시 글이 쏟아지고 있다. 거래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상에서 폐쇄적으로 이뤄져 여간해선 적발이 쉽지 않다. 안 그래도 종이 책 판매 급감으로 고사 위기에 처한 출판업계의 어려움만 가중되고 있다.
"2000부 찍어도 5년째 안 팔려"
11일 서울 A사립대의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타)에는 이날 0시부터 오후 3시까지 PDF 파일을 구하는 글이 30건 넘게 올라왔다. 수강신청에 성공한 과목의 교재를 구하는 이들이었다. 몇 만 원씩 하는 전공서적을 사고파는 대가는 고작 2,000원에서 1만 원 이하였다. 커피 쿠폰으로 2만 원대 서적 파일을 사겠다는 작성자는 하루 만에 "마감됐다"고 알렸다. "저도 사례할 테니 파일을 받고 싶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파일 거래 실태는 심각하다. 지난주 한국학술출판협회에 제보가 들어왔다. B대의 강의 교재 100권을 구내 서점에 비치했는데, 두세 권만 팔린 것을 의아하게 여긴 교수가 불법 거래 사실을 에타에서 확인한 것이다. 교수의 전언에 출판사는 법적조치를 취해달라고 협회에 요청했다. 박찬익 협회장은 "새 학기면 비슷한 내용의 제보가 숱하게 들어온다"고 말했다.
출판사들은 죽을 맛이다. 학술전문 출판사 김모(65) 대표는 "예전 같으면 한 해 2,000부를 만들면 곧장 나갔는데 지금은 5년이 지나도 안 팔린다"면서 "청춘을 다 바쳐 운영한 회사인데 이러다 문을 닫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 대표는 신간을 내려 해도 투자금이 회수되지 않고 재고만 쌓이다 보니 출판업계 발전도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35년간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 회장도 "새 책을 펴내도 첫 학기에만 반짝 팔리다 다음 학기엔 절반을 밑돌고, 그 이후엔 거의 안 나간다"고 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 강의가 활성화하자, 교수들이 PDF를 사이버강의실에 올려두거나 학생들도 태블릿PC 등을 활용한 PDF 수업 방식을 선호하면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대학생 임모(22)씨는 "책이 무겁고 비싸 강의실에서 종이 책을 쓰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며 "대부분 중앙도서관이나 학교 앞 셀프스캔방에서 전자문서로 만들어 전자기기에 넣어 두는 편"이라고 말했다. 서대문구 신촌에서 13년간 복사업체를 운영한 C씨는 "10년 전만 해도 학생들이 수시로 오갔지만, 이젠 매출에서 대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오픈방에서 거래 후 순삭... 적발 어려워
정부도 해마다 신학기 PDF 거래 단속에 나서고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저작권보호원 등과 함께 3월 대학가 복사 업소를 대상으로 불법출판물 단속을 진행한 결과 △2021년 3곳(60건) △2022년 28곳(155건) △2023년 76곳(370건)이 적발됐다. 문체부 특별사법경찰관은 현재 3,000여 개의 출판물을 불법 스캔해 제본판매하거나 이메일 전송 등으로 판매한 복사업체 한 곳을 수사 중이다.
하지만 만연한 불법 복제 실태를 감안하면 신통치 않은 실적이다. 사실 불법 주체를 가려내는 것부터 어렵다. 문체부 관계자는 "업자가 불법 복제를 하는 건지, 학생들이 직접 스캔한 건지 구분하기 어렵고, 최근 무인스캔방이 늘면서 누가 어떻게 범행했는지 과정도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만 들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에서 거래가 오가고 오픈카톡방으로 소통 후 방을 없애는, 이른바 '떴다방' 식으로 운영돼 증거 확보도 여의치 않다.
박 회장은 "학생들을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스티커를 만들거나 온라인플랫폼에 경고 문구를 띄우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지만 범죄를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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