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기승: ②장원영 사건의 전말]
유튜브 익명 보장 덕 허위사실 대놓고 날조
정경석 변호사가 미 법원 '디스커버리' 활용
미 사법체계 이용, 구글서 운영자 신원 확보
"장원영은 중국 사람이다. 남자 연예인과 사귄다. 중고 명품을 입고 패션쇼에 갔다."
연예인 관련 가짜뉴스를 무차별로 생산하던 유튜브 채널인 '탈덕수용소'. 2021년 개설된 탈덕수용소는 비슷한 성격의 사이버 레커(cyber wrecker·이슈마다 주제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유튜버)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채널이었다. BTS, 아이브, 에스파, 뉴진스 등 인기 아이돌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는데, 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20)도 그 핵심 표적 중 하나였다.
다른 유튜버들의 과장·왜곡은 애교로 보일 정도로, 이 탈덕수용소는 아예 없는 사실을 100% 날조해 연예인 관련 이슈를 무차별 생산했다. 연예인 실명과 사진을 그대로 갖다 썼고, 자극적 제목과 썸네일로 이용자의 눈길을 끌었다. 100만 조회 수에 달하는 영상까지 나오자, 운영자는 '돈을 내면 더 비밀스런 콘텐츠를 공유하겠다'며 급기야 유료회원도 모집했다.
장원영의 소속사는 채널 운영자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지만, 구글(유튜브 소유 회사)은 미국 회사라 곧바로 피해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 사이 많은 이들의 알고리즘에 탈덕수용소 영상이 노출됐고, 가짜 정보는 마치 사실인 것처럼 세상에 퍼졌다. 지난해 6월 탈덕수용소 채널은 문을 닫았지만, 허위 영상은 아직도 온라인을 망령처럼 떠돌며 장원영을 괴롭힌다.
그러던 지난해 7월, 드디어 운영자 신상이 확보됐다. 1988년생 여성 박모씨. 유튜브가 채널 운영자의 신상정보를 제공한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었다. 이 정보를 이용해 장원영은 박씨에게 소송을 걸어 1심에서 1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한국일보는 가짜뉴스 유튜버를 상대로 승소를 받아낸 이 드문 사례에 얽힌 얘기를 듣기 위해, 장원영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리우 정경석 변호사를 만났다. 정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통해 익명 뒤에 숨어 허위 영상을 올리던 채널 운영자의 신원을 알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채널 운영자들이 앞으로 영상을 제작할 때 경각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원 확보까지 지난한 과정
가해자가 가짜뉴스를 유포시키는 것은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끝날 정도로 쉬웠다. 그러나 피해자가 허위정보를 차단하고 유포자에게 배상을 받아내기 위해선 미국 대기업인 구글과 거대한 미국의 사법체계를 움직여야 했다.
사건 초기 정 변호사가 아는 것은 유튜브 채널 이름뿐. 이름도 주소도 모르는 '아무개'에게 소송을 낸들 제대로 진행될리 만무했다. 구글코리아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운영자 정보는 미국 본사에서 관리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래서 미국에 직접 문을 두드렸다. 정 변호사는 "한미 사법공조 시스템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도 있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결과도 확신할 수 없었다"며 "그래서 미국의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재판 전 양쪽 당사자들이 문서나 증거를 상호 공개하도록 하는 절차다. 사건과 연관된 제3자에게도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국내에는 도입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1938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장원영의 소속사와 정 변호사는 구글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법에 정보제공 명령을 신청했고, 이에 따라 구글은 관련 정보를 제공하게 됐다. 위기감을 느낀 탈덕수용소가 돌연 계정을 삭제한 것이 바로 그 즈음이었다.
미 법원에 한국법 설명하기 '난관'
수정헌법 제1조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이라 신원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는 형사상 명예훼손죄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탈덕수용소의 악의적 영상이 한국법상 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에 해당하는지를, 미국 법원에 자세히 설명하는 일에 주력했다. 정 변호사는 "미국 입장에서는 외국 법원 소송에 대한 증거조사였기 때문에, 미국법에 따른 명예훼손 여부의 판단을 구하는 것은 아니었다"며 "운영자 신원을 확보해야 대한민국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장원영을 걱정한 팬들의 역할이 컸다. 팬들은 탈덕수용소 영상을 일일이 이미지로 따서 소속사에 건넸고, 직원들 역시 영상 캡처와 번역에 동참했다. 그 파일만 수천여 개에 달했다.
부푼 기대 속에 구글로부터 받은 첫 통지서는 실망스러웠다. 유튜브 계정 아이디와 개설일, 인터넷프로토콜(IP) 주소 등 대략적인 정보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재차 구글에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했지만, 이번에는 탈덕수용소가 수익 창출을 하는 계좌 정보뿐이었다. 그렇게 3번째 시도만에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다. 해당 자료를 토대로 한국 법원에 소송을 냈고, 주소보정 명령을 통해 완전히 정보를 확보했다.
이제 명예훼손은 수익형 사업
이 지난한 과정을 함께 했던 정 변호사는 최근 허위영상 유포자들이 단순히 유명인을 조롱하고 비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짜뉴스를 통해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수익형 명예훼손 사업'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 자극적 콘텐츠를 유통하는 것이 경제적 수익 창출 수단이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분석했다. 또 "이미 (가짜뉴스로) 수억 원을 번 사람이 었는데, 몇백만 원 수준의 벌금이나 손해배상은 의미가 없다"며 "범죄수익을 단호하게 몰수·환수하는 등 철퇴를 내려야 확실한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차별 허위 정보를 올리는 이들에 대해서도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정 변호사는 "자신이 올린 콘텐츠나 디지털 흔적으로 책임을 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며 "허위 조작이 더 쉬워지고 있는 만큼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덕수용소를 상대로 한 소송은 현재 진행형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장원영과 소속사가 박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박씨는 항소했고 "연예인에 대한 공익, 알 권리 목적이었다"고 변명했다.
정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탈덕수용소처럼 고의적 허위사실로 남을 헐뜯어 돈을 버는 일까지 허용돼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사회 질서에 위반된다면, 그땐 완전히 다른 문제 아닐까요? 합의나 선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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