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매주 출판 담당 기자의 책상에는 100권이 넘는 신간이 쌓입니다. 표지와 목차, 그리고 본문을 한 장씩 넘기면서 글을 쓴 사람과, 책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이를 읽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출판 기자가 활자로 연결된 책과 출판의 세계를 격주로 살펴봅니다.
2014년 4월 사회부 소속이던 저는 전남 진도 팽목항에 있었습니다. 온 국민을 공분에 몰아넣고 눈물짓게 했던, 4월의 그 기사들을 쓰기 위해 말이지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현장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작은 단서들을 찾아 며칠을 헤맸지만 어떤 것도 쉬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진실 규명이라는 과제를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긴 채로 수년이 흘렀죠. 부서가 여러 번 바뀌는 사이, 세월호 기억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신기하게도 15일 출간을 앞둔 두툼한 신간을 차례로 집어드는데 그 기억이 어제 일처럼 소환됐습니다.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쓴 기록집 '520번의 금요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와 304낭독회가 엮은 선집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입니다. 저자가 수십 명이고 세 권에 등장하는 인물은 수백 명에 달합니다. 팽목항 곳곳에서 가족을 보살핀 진도 주민들, 동거차도에 천막을 치고 애도의 공동체를 만들어 연대한 유가족까지 여러 사람의 기억으로 이어진 긴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지난 10년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왔는지 인식하게 됩니다. 아직도 진행 중인 고통이 내 것인 듯 느껴집니다.
망각 속에서 더듬더듬 기억을 끌어 올리면서 철렁했습니다. 알고리즘 작동으로 구미에 맞는 단편적인 정보와 이미지를 취하면서 얼마나 많은 서사를 놓치며 살고 있는 걸까요. 주변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태도가 이들의 삶을 더 고달프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최대한으로 확장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타인을 향한 이해, 이타성을 박탈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게 사람의 이야기를 옮기는 책의 힘과 진심을 새기며, 여기 얼마간의 활자를 보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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