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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가 낳은 형제 작가, "지금이 인생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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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가 낳은 형제 작가, "지금이 인생의 봄"

입력
2024.03.17 17:37
수정
2024.03.17 18:1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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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효정 아들 박진수·박진환 형제
고향 울산서 '고향의 봄' 초대전, 17일 막 내려
평생 '빨갱이 가족' 낙인, 그림·조각으로 승화

울산 대표 여성독립운동가 이효정 선생의 막내아들 박진환 작가가 7일 울산 동구 문화공장 방어진에서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울산=박은경 기자

울산 대표 여성독립운동가 이효정 선생의 막내아들 박진환 작가가 7일 울산 동구 문화공장 방어진에서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울산=박은경 기자

“아무 의미 없어요. 그냥 먹고살려고 한 거지.”

조각을 하게 된 계기, 말을 주로 다루는 이유, 작품에 녹여내고 싶었던 메시지, 고향의 의미. 무얼 물어도 백발이 성성한 노년 조각가의 대답은 “그냥”이었다. 무미건조한 답변 속에 짙은 고단함이 묻어났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미술작가로 발을 내디딘, 울산 대표 여성독립운동가 이효정(1913~2010) 선생의 막내아들 박진환(81) 작가다.

지난 7일 울산 동구청이 105주년 3·1운동 기념사업으로 마련한 초대전 ‘고향의 봄’ 개막식이 열린 문화공간 방어진에서 만난 박씨는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영원히 살아있다는 의미”라며 “고향에서 아직 어머니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17일 폐막한 초대전에는 박씨의 조각 50점과 친형인 박진수(86) 화가의 그림 15점 등 총 65점이 전시됐다. 형제가 함께 여는 첫 작품전이었지만 진수씨는 낙상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박씨는 “형님도 나도 정규 미술교육은커녕 학원 문턱 한번 넘어 본 적이 없다”면서 “그래서 이번 공동 전시가 더 뜻깊다”고 말했다.

울산 동구청이 105주년 3·1운동 기념사업으로 마련한 박진수·박진환 형제 초대전 ‘고향의 봄’. 울산=박은경 기자

울산 동구청이 105주년 3·1운동 기념사업으로 마련한 박진수·박진환 형제 초대전 ‘고향의 봄’. 울산=박은경 기자

박씨는 100년 전 울산 동구 일산동 보성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던 이효정과 동료 교사 박두복(1912~?)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이효정은 전설적인 노동운동가로 1933년 조직된 사회주의운동단체 ‘경성 트로이카’의 구성원이었다. 아버지 박두복은 교원노조 활동을 하다가 2년간 옥살이를 했던 사회주의 운동가로,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약하기도 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월북했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형사들은 한밤중에 구둣발로 들이닥쳐 무차별 발길질을 해댔고, 동네에선 ‘빨갱이 가족’이라고 괴롭혔다. 그는 “한번은 어머니가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면서 “그 당시 부러진 오른쪽 팔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평생을 팔목이 비틀어진 채로 사셨다”고 회상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는 건 사치였지만 박씨에게는 타고난 손재주가 있었다. 주변에 버려진 종이박스를 주워 물에 불린 뒤 찢어 붙이는 방식으로 다양한 형상을 조각했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생계 수단이었던 목수 일도 큰 도움이 됐다. 박씨는 “목수로 생계를 잇다 보니 손재주가 더 늘었다”며 “석고나 흙으로 조각을 해서 상업용 조각을 만들어 주물공장에 납품해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 본격적인 작품활동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는 목수 일도 접고 작가로 전향했다. 그는 이왕 시작한 만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독립운동가 이효정과 박두복의 딸 박진영(왼쪽부터)씨와 큰아들 박진수, 막내아들 박진환씨. 박진환씨 제공

독립운동가 이효정과 박두복의 딸 박진영(왼쪽부터)씨와 큰아들 박진수, 막내아들 박진환씨. 박진환씨 제공

그의 작품은 어디론가 달려가는 역동적인 말(馬)의 형상이 대부분이다. 형인 진수씨의 그림도 허리가 굽거나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미는 노인 등 고단한 삶을 다룬 작품이 많다. 평생을 쫓겨 다니며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가족의 삶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부모를 원망해 본 적은 없다. 지금이 인생의 봄이라는 박씨는 “살다보니 살아지더라.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부모는 그 선택을 할 것이고, 내가 그때의 부모라도 마찬가지다”며 웃었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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