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 '맵스9-2' 상장폐지 통보
코로나 여파로 빌딩 20% 손해 보고 매각
수익률 -55%까지...금감원 "판매 과정 점검"
'부동산이 설마 떨어지겠냐'는 말에 투자했다가 반도 안 남았어요.
70대 김모씨는 2016년 평소 거래하던 증권사 직원의 전화를 받고 귀가 솔깃했다. 미국 도심 한복판의 건물을 매입해 임대하는 상품인데, 매년 4~6%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20년 이상 장기 임차 계약이 체결됐고, 임대료도 매년 2%씩 오른다고 했다. "불티나게 팔린다"는 말에 김씨는 4억 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현재 김씨의 남은 투자금은 1억5,000만 원 수준. 그는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며 "증권사 직원은 '누가 코로나19를 예상할 수 있었겠나'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세계 부동산 경기 침체로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판매한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에서 50%가 넘는 손실이 발생하자 일부 투자자들이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들은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관련 주가연계증권(ELS)처럼 증권사가 손실을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금융당국이 점검에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9일 만에 완판된 상품…원금 반토막으로 돌아와
19일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투자자들에게 21일 만기에 따라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9-2호(맵스9-2호)'를 상장폐지한다는 계획을 전했다. 2016년 9월 출시 당시 9일 만에 완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국내 1호 해외 상업용 부동산 펀드다. 공모 3,000억 원, 부동산 담보 대출 5,247억 원을 더해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시티라인 내 오피스 4개 동을 매입한 뒤 미국 손해보험사 업계 1위 스테이트팜에 20년간 장기 임차를 줘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당시 운용사 측은 스테이트팜이 업무시설 100%를 책임 임차하는 계약이 체결돼 안전성이 높다고 홍보했다. 또 부동산 가격 인상에 환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국 상업용 건물의 공실률이 치솟으면서 사달이 났다. 결국 지난해 10월 미래에셋은 2016년 매입가 대비 20% 하락한 5억8,000만 달러에 해당 건물을 매각했다. 부동산 담보 대출까지 상환하자 만기 수익률은 -55%까지 떨어졌다.
"만기 연장하면 원금 회복" vs "추가 하락 리스크"
갑작스러운 상장폐지 통보에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한 투자자는 "올해 하반기부터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데 투자자에게 어떠한 설명도 없이 자산을 팔아버렸다"며 "시장이 바닥을 친 만큼 만기 연장 시 원금 회복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행 기준상 운용사가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투자자 동의를 구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운용사가 투자자 보호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하나대체투자나사부동산투자신탁1호'나 '이지스글로벌229호' 등 비슷한 펀드의 경우 손실이 크자 수익자(투자자) 총회를 열어 만기 연장을 결정했는데, 미래에셋 측은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 관계자는 "미국 금리가 지속 상승하면서 건물 자산가치가 급락했고, 고금리 기조 유지 전망에 따라 추가 하락 리스크도 큰 상황"이라며 "현재의 임대차 계약도 만기 이후 사용 계획이 불투명해 향후 자산가치 회복도 불투명했다"는 입장이다.
올해 만기 맞이한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 1조 원
주식의 현재 시세인 주가처럼 펀드의 현재 가격을 나타내는 '기준가'가 왜곡될 수 있는 상품 구조인데도 이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고 투자자들은 주장했다. 한 투자자는 "맵스9-2의 기준가가 작년 6월 588원까지 떨어져 증권사 직원에게 물었더니 800원대까지 회복할 거라고 했다"며 "이를 믿고 돈을 빌려 6,000만 원을 추가 투자했는데 하루아침에 300원대까지 떨어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평소에는 환율 등을 기준가에 반영하고 부동산 가치는 연말에 평가해 연 1회 반영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건물 가치를 추종하는 금융상품임에도 건물 가격이 지속 하락하고 있는 점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는 상품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맵스9-2를 시작으로 부동산 호황기에 판매된 펀드들의 만기가 줄줄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가 설정한 임대형 해외 부동산 공모 펀드 규모는 작년 9월 말 기준 2조3,000억 원(21개)이다. 이 중 올해 만기를 맞이하는 공모펀드는 총 8개로 9,333억 원 규모다. 부동산 경기 회복이 없다면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업계에선 증권사에서 판매한 펀드 상품인 만큼 은행에서 주로 판매된 ELS 대비 자기 투자 원칙이 더욱 엄격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산을 사고파는 것은 운용사 고유의 몫이지만 수익자 보호를 위해 충실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민원이 상당수 들어온 만큼 펀드들의 운용 상황을 들여다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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