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국민 여론 감안한 판단"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전격적으로 마음을 바꾼 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배수진이 결정타였다.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사퇴와 이종섭 주호주대사 귀국 요구를 줄곧 거부했지만, 한 위원장이 전날 "총선에 패배하면 윤석열 정부도 끝"이라고 발언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자 마지못해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국정운영을 향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여권의 넘버 1·2가 손을 잡으며 일단 갈등을 봉합했다.
여권에서는 전날 오후부터 윤 대통령의 전향적 판단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한 위원장이 총선 패배와 윤석열 정부의 사망선고를 언급하자 대통령실 안팎에선 “아무리 윤 대통령이라도 이번만은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느냐”며 기류 변화를 점쳤다. 실제 국민의힘 수도권 총선 출마자 대부분이 윤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그중에는 이관섭 비서실장의 교체 요구도 포함됐다. 이에 황 수석은 전날 저녁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고 윤 대통령은 이날 새벽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 체면을 지켰다. 25일 열리는 정부 주관 공관장 회의를 위해 이 대사를 귀국시키는 방안은 양측 입장을 절충했다는 평가다. 여당 내에선 이 대사의 즉시 귀국과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혼재된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이 대사를 무작정 불러들일 경우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할 수 있어 이번 회의에 이 대사를 불참시키는 방안도 검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은 해임보다는 ‘조기 귀국’ 결정으로 봉합에 나섰다. 당내에서 이 대사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하지만 한 위원장은 이날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선언하며 일단 매듭을 지었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의 기존 판단에 법적·절차적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한 건 아니라는 게 대통령실 입장이다. 다만 21일 시작되는 총선 후보자 등록 기한 전에 당정 갈등을 수습할 필요성이 컸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으로 터진 1차 '윤-한 갈등’과 달리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인 건 '총선 리스크' 제거가 급선무라는 점에 양측이 공감한 결과다.
하지만 당정이 간극을 완전히 좁힌 건 아니다. 여당 내에선 이 대사의 호주대사 임명 자체가 총선 내내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주장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당 관계자는 “국민들은 ‘도대체 왜 이 타이밍에 임명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는 듯하다. 뇌관은 여전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 대사 귀국 후에도 여론이 좋지 않을 경우 또다시 이 대사 해임 여부를 두고 당정이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도 애써 속을 삭이는 건 마찬가지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황 수석 논란과 달리 이 대사의 경우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면서 “조기 귀국 요구까지는 수용할 수 있어도 해임을 당장 결정하는 건 윤 대통령 국정 철학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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