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감싸안은 북한강변 집
중정과 다락 품은 4층 상가주택
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예비 은퇴자들에게 상가주택은 로망이다. 상가 딸린 든든한 집 한 채를 짓고 살며 여유로운 노후를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가주택에서는 사생활 보호가 어렵지 않을까' '야외 공간이 없어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도 차오른다. 상가주택을 지은 주훈(54)씨 부부는 이런 걱정을 해소할 방법을 베란다에서 찾았다. 밖에서 보면 영락없는 상가건물이지만 맨 위층 주거 공간에 단독 주택에 있을 법한 베란다와 다락을 만든 것. 상가와 전원주택의 로망을 함께 담은 '기연가'(대지면적 561.00㎡, 연면적 560.69㎡)는 상가인지 주택인지 기연가미연가하는 집이다. 1, 2층이 근린생활시설이고, 3,4층이 주택인데, 주씨 부부와 아들까지 세 식구가 4층 전체와 다락을 주거 공간으로 쓴다.
'긴가민가' 주택의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부는 노모가 사는 경기 양평군 문호리에 재테크 목적으로 땅을 매입했다. 당시엔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도로변이라 소음이 끊이지 않고 외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해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 "어느 날 주변을 걷는데 북한강 풍경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래는 도로와 접하고, 위로는 강을 바라보는 건물을 그려보니 잘만 구성하면 수익과 주거를 모두 잡을 수 있겠더라고요."
평생 도심 아파트에서 산 직장인 부부에게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부어 상가 주택을 짓는 건 모험이었다. 수익만큼이나 주택의 로망을 실현하는 게 중요했던 부부는 양평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를 수소문하다 조병규(투닷 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가를 만났다. 한 시간 가까이 면담을 하고선 '이분이다'는 확신이 들었단다. 대체 어떤 대화가 오고 갔길래 한 번의 만남으로 마음 복잡한 부부를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그날 미팅에 갔더니 소장님이 회식을 하고 오셨더라고요. 취기를 숨기면서 열성적으로 상담에 임하시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다가왔어요. 심지어 '일정상 일은 맡지 못할 것 같지만 어떤 집을 짓든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주시니 무장해제된 거죠. 그래서 꼭 설계를 맡아달라고 매달렸어요."
상가는 드러내고, 집은 감추고
1년 반 만에 완공된 기연가는 상가는 드러내고, 주택은 숨겼다. 건축주가 처음부터 "성냥갑처럼 네모난 건물은 싫다"며 '문호리의 랜드마크'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던 터. 조 소장은 "튀는 디자인을 선호하지 않는데, 이번만큼은 형태적인 존재감을 부각했다"며 "곡선과 직선을 섞고, 콘크리트, 스타코, 유리 등 다양한 마감재를 써서 시각적인 재미를 줬다"고 설명했다.
외부에 다양한 재료와 디자인이 혼재해 어디까지가 상공간이고 어디에서부터 주거공간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주씨 가족이 사는 곳은 매끈한 흰색 벽에 길고 좁은 창이 줄지어 나 있는 4층이다. 밖에서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긴 복도의 측면을 따라 세로로 긴 창을 여러 개 냈다.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조 소장은 "건물이 도로와 인접해 있다보니 바깥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사생활 보호에 신경을 써야 했다"며 "긴 창을 설치하면 내부에서 시야를 확보하면서도 통창에 비해 외부 시선을 걸러준다"고 했다.
4층 공간을 길게 가로지르는 복도는 창이 많은 덕분에 답답하지 않다. 종일 각도를 바꾸며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복도를 걸으면 런웨이를 걷는 듯하다. "정해진 기능만 있는 공간보다는 다양하게 해석되거나 쓸 수 있는 공간이 좋은 공간일 때가 많아요. 집에서 좋은 감각과 추억을 쌓기에 좋은 공간들이죠."
중정과 다락을 품은 집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4층 공간은 들어서는 순간 매력을 발산한다. 공간 한가운데 마당 역할을 하는 외부 베란다가 있고 방, 거실, 부엌이 그 주변을 빙 둘렀다. 외기가 통하는 베란다는 이 집의 자랑이다. 베란다 벽은 자연석을 일일이 깨서 붙였고 바닥엔 나무 바닥재를 깔아 자연의 물성을 살렸다. "하늘로 열려 있는 방"이라는 건축가의 설명대로 외부 공간으로도 내부 공간으로도 쓰임이 다양하다. "대지가 차로에 면해 있으니 소음도 문제고, 외부 시선으로부터 사생활을 보호해야 했어요. 아내분이 요구한 마당도 필요했고요. 이 모든 문제와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방마다 통할 수 있는 개별 테라스를 두고 일부는 길을 내서 연결했어요."
부부 방과 자녀 방에 개별 베란다가 있다보니 같이 살면서도 각자 은둔하는 생활이 가능하다. 창을 문 삼아 안과 밖을 넘나드는 동선은 가족이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부분. 원예를 좋아하는 아내는 이 공간을 작은 정원으로 가꿔가고, 애연가인 남편은 하늘과 맞닿은 사치스러운 흡연 공간을 갖게 됐다. 테라스가 딸린 안방은 전망이 가장 좋은 공간이다. 작은 베란다는 두 사람이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티타임을 즐기기에 맞춤하다. "자연 가까이에 살고 있다는 걸 매일 아침 실감해요.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으면 침대에서도 시선이 하늘까지 닿거든요."
면적이 넓지 않다 보니 더하거나 덜 것 없이 세 식구에게 꼭 필요한 요소만 들였다. 그중에서 남편이 차지한 공간은 다락. "다른 건 다 상관없는데 저만의 공간을 꼭 갖고 싶었어요. 남자의 동굴이라고 할까요. 층간 소음 신경 쓰지 않고 다락에서 영화 보고 음악 듣고 하는 일상이 참 좋아요. 저에게 주는 선물 같은 공간이에요."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집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기연가로 들어온 지 3개월. 일면 단순해 보이는 집에는 가족들의 각별한 애정이 곳곳에 녹아들었다.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서울에 있는 직장에서 서둘러 퇴근해 식탁에 마주 앉는 날이 늘었고, 식사 후에는 베란다에 나가 와인 한잔을 나누는 게 일상이 됐다. 주말이면 아내는 하늘 정원에서 화초를 가꾸고 남편은 다락에서 머물다가 계절의 변화를 눈치채는 순간이면 아무 때고 베란다로 나가 자연을 즐긴다. 상가주택에서도 얼마든지 풍성한 자연을 누릴 수 있다. "임대수익으로 노후를 대비하면서도 아파트를 벗어나 집 같은 집에 살고 싶다는 꿈같은 소망이 이뤄졌어요. 수십 년 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다 한숨 고르기로 결심했을 때 이 집을 만났어요.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집이랄까요. 이 집과 함께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싶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