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귀국 후 "일정 알릴 테니 소환하라"
"아직 부를 단계 아닌데"... 공수처 '당혹'
'해병대 병사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주호주대사(전 국방부 장관)가 도피성 출국 논란 끝에 귀국함에 따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쪽으로 공이 넘어갔다. 그러나 공수처는 막상 그를 부를 수가 없어 난처하다. 아직 기초조사가 끝나지 않아 수사 단계상으론 그를 섣불리 부를 시점이 아니어서다. 다만 정치권까지 가세해 "빨리 조사하라"며 공수처를 압박하는 상황을 마냥 두고 볼 수도 없어,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21일 이 대사의 귀국은 부임지인 호주로 출국한 지 11일 만이다. 그간 여당을 중심으로 나온 조기귀국 후 조사 요구 목소리에 부응한 것이다. 그는 변호인을 통해 "모든 국내 일정을 공개할 테니 소환을 해 달라"며 "(이 사건은) 고발내용 자체로 충분히 법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의견을 공수처에 전달했다. 바로 부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충분한 조사 준비기간이 있었으니, 이번에는 당연히 공수처가 소환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사는 이달 25일 외교부·국방부·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주관하는 방산협력 공관장회의에 참석한 뒤, 다음 달 10일 총선일까지는 국내에 체류할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에는 20일 정도 시간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대사 바람대로 이 기간 동안 신속한 조사가 이뤄지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수사 상황으로 볼 때 '윗선'에 해당하는 당시 장관을 부를 단계가 아직 아니다. 수사팀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 이 대사까지 연결된 인물에 대한 조사를 매듭짓지 못했다. 일부 관계자의 압수물 분석 절차는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태에서 상급자를 먼저 불러봐야 제대로 된 조사는 불가능하다는 게 수사팀 판단이다. 앞서 이 대사는 이달 7일 공수처에 나가 4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뒷날 법무부가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하면서 출국했다. 그때와 비교해 수사에 큰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여권에선 공수처의 수사 속도를 문제 삼지만, 전례에 비춰 이번 수사 속도가 꼭 늦다고 볼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7월 해병대 수사단의 채모 상병 순직사건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결재했다가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를 받고 있다.
직권남용 사건 수사는 위에서 내려온 부당한 지시를 규명해야 해서, 밑에서부터 위로 타고 올라가는 조사가 필수적이다. 해병대 사건보다 사건관계자가 적고 구조가 단순한 사건도 핵심 피의자 소환은 더디게 이뤄졌다. 공수처보다 많은 수사 자원을 보유한 검찰도 김명수 전 대법원장 사건을 2021년 3월부터 수사했지만 아직 그를 불러 조사하지 못했다. 김 전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표 수리를 거부하고 국회에 거짓 답변서를 보낸 혐의로 고발됐다. 지난해 7월에야 '키맨'격인 김인겸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소환조사했다.
이 대사가 공수처와 별도로 군사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수사 외압 의혹을 주장하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측은 이날 열린 항명 등 혐의 사건 3차 공판에 앞서 "이 대사를 1번 증인으로 신청해 법정에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사가 국내에 머무는 동안 증인 출석 요청에 응해 입장을 직접 설명할 가능성도 있다.
공수처는 수사가 어렵다는 기류가 강하지만, 이 대사가 머무는 동안 그를 부르지 않으면 '수사 지연 책임'을 지적하는 비판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이 대사의 귀국 이후 외부 입장 표명을 최소화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물 분석과 관계자 조사 등 정해진 절차대로 차분히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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