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 애플 상대 반독점 소송
주가 4% 하락, 시총 150조 원 증발
"애플의 성공 요인, 골칫거리 전락"
애플을 시가총액 세계 1, 2위를 다투는 자리까지 올려놓은 핵심 전략은 '폐쇄적 생태계'다. 하드웨어는 자체 개발하지만 그 하드웨어를 작동시키는 운영체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쓰는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달리 애플은 자체 운영체제(iOS)와 플랫폼(앱스토어 등)을 갖추고 있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연동되는 제품군을 완비하고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애플 제품을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생태계에서 좀처럼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소비자를 생태계 안에 가둬둔다는 이른바 '록인(Lock-in·자물쇠)' 효과가 이렇게 생긴다.
그러나 지금의 애플을 만든 이 전략 때문에 애플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과 더불어 애플의 가장 큰 시장인 미국과 유럽의 규제 당국이 21일(현지시간) 동시에 애플의 폐쇄적 생태계를 정조준하고 나서면서다. 자국에서 심판대에 올랐다는 사실은 애플에 특히 치명적이다. 이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애플 주가는 약 4% 하락했고, 하루 새 시총은 1,130억 달러(약 150조 원)어치 증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의 성공 요인이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다"고 분석했다.
"혁신 경쟁 대신 경쟁 방해" 칼 빼 든 미국
미국 법무부는 이날 15개 주(州) 및 수도 워싱턴 법무장관과 함께 애플을 상대로 한 반(反)독점법 위반 소송을 뉴저지주 연방법원에 제기했다. 약 5년간의 조사 끝에 법무부는 애플이 경쟁사들의 서비스를 자사 기기와 연동해 쓰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식으로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결론 냈다. 즉 애플이 더 좋은 제품·서비스로 승부하기보다는 대체재 이용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방식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사실상의 독점 구도를 구축하고 강화했다"는 것이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애플이 (이를 통해) 미국 스마트폰 시장의 65%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고 이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구체적으로 법무부는 △애플이 아이폰에서 자사 지갑(애플월렛)이 아닌 경쟁사 서비스(구글월렛 등)는 쓸 수 없도록 하고, △아이메시지(무료 메시지 송수신 서비스) 같은 자사 앱은 타사 기기에서 내려받아 쓸 수 없도록 막아왔다고 주장했다. 또 △아이폰에 타사 기기를 연동해 쓰는 것도 어렵게 만들어 놨다고 지적했다.
당국이 이번 소송으로 얻고자 하는 건 애플의 생태계 개방이다. 대니얼 프랜시스 뉴욕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애플이 다른 회사들과 협력해 그들의 제품·서비스를 아이폰과 더 원활하게 연동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는 게 법무부의 생각"이라고 WSJ에 말했다. "애플의 시장 지배력을 몰아내기 위한 연방정부의 가장 공격적인 시도"라고 워싱턴포스트는 평했다.
유럽선 매출 최대 10% 벌금 물 수도
애플은 유럽에서도 비슷한 위기에 놓여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애플·구글의 디지털시장법(DMA)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전했다. 이달부터 시행된 DMA는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고 판단될 경우 최대 매출의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애플은 올 들어 유럽에서 앱스토어가 아닌 앱 장터와 개발자 웹사이트에서 앱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전면 개방했다. DMA 시행을 의식한 조치였으나, 이런 노력에도 결국 칼끝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소송과 조사의 결과가 어떻게 날지는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대상이 됐다는 것만으로 애플에는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WSJ은 미국 반독점 위반 소송의 경우 일단락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소송에 휘말린 것 자체로) 애플이 서비스 사업을 더 성장시키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애플이 이미 유럽에서는 앱 유통 문턱을 낮췄다는 점에서 미국 등에서 추가적으로 생태계 개방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테크업계 관계자는 "이 경우 애플만의 차별성이 약해지고 록인 효과가 반감되면서 삼성전자 등에 반사이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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