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외신을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돼지화가 '피그카소'(Pigcasso)가 여덟 살의 나이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접했다. 피그카소는 돼지(pig)와 ‘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Picasso)를 합친 말로 2019년 한 전시회에서 피카소와 화풍이 비슷하다는 칭찬을 들은 이후 얻은 별명이라고 한다.
국내에는 2021년 그의 작품 '야생과 자유'가 독일의 한 투자자에게 약 3,100만 원에 판매돼 동물이 만든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하면서 알려졌다. 기자와의 인연은 이보다 훨씬 전이다. 해외에서 그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시점인 2017년 당시 그의 구조자이자 팜생크추어리SA 운영자인 조앤 레프슨으로부터 그의 작품 '선데이 타임스'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돼지에게 힘들게 그림을 그리게 시키는 것 아닌가 의심도 했다. 하지만 레프슨이 공개한 영상에는 캔버스에 자유자재로 붓을 놀리는 그의 모습이 담겼고, 예술혼을 발휘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의 작품은 한동안 거실에 걸려 있다 다른 작품에 자리를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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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피그카소의 존재를 잊고 있던 차 다시금 떠오른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7월 방한한 세계적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을 단독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를 언급한 것이다. 구달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이야기를 들려주며 설득하는 방식을 택한다고 했고, 그 사례로 피그카소를 들었다. 돼지가 똑똑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피그카소의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이제 베이컨을 못 먹게 됐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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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카소와 함께 돼지의 사랑스러움을 알린 또 다른 주인공이 떠올랐다. 지난해 가을 열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반려돼지 '에스더'(Esther)다. 에스더의 두 아빠인 스티브 젠킨스, 데렉 월터는 그와 함께한 삶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렸고 팔로어만 154만 명에 달할 정도로 전 세계인으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에스더는 식용으로 길러지는 돼지의 삶을 알리고, 많은 이의 식습관 변화를 일으켰다. 두 아빠는 그의 지능, 성격, 미소를 보고 긍정적 영향을 받는 것을 '에스더 효과'로, 육식을 줄이거나 채식을 시작하게 하는 현상은 '에스더 인증'이라고 불렀다.
에스더 가족은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두 아빠는 국내 개농장에서 구조된 오브차카종 '앨리스'를 입양했다. 또 이들이 쓴 저서 '대단한 돼지 에스더'(책공장더불어)의 출간을 계기로 이메일 인터뷰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의 친절함과 사랑스러움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에스더는 우리가 말하는 것, 기쁨과 슬픔을 포함한 감정을 느낀다"며 "그의 친구였던 반려견 셸비가 떠났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고 전한 바 있다.
피그카소와 에스더는 모두 유전자 조작, 변형 등으로농장돼지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관절염 등의 질병을 앓았다. 보통 식용으로 길러지는 돼지는 6개월 안팎에 도축되므로 돼지를 위한 치료법은 깊이 개발되지 않았다. 에스더가 유방암에 걸렸을 때는 대형동물 진단을 위한 컴퓨터단층촬영(CT) 기기가 없어 두 아빠는 이를 구입하기 위한 모금활동을 했고 결국 수술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우리는 동물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농장동물 복지에 더 소홀하다. '동물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논리를 쉽게 적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돼지의 똑똑함과 사랑스러움을 전 세계에 알린 피그카소와 에스더의 죽음은 더욱 안타깝다. 세상을 빛낸 두 돼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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