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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세계 최초로 쓸모없이 버려진 배터리 분리막에 새 가치를 불어넣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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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세계 최초로 쓸모없이 버려진 배터리 분리막에 새 가치를 불어넣어요"

입력
2024.03.25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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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 원단 생산 스타트업 '라잇루트' 천안 공장
세계 최초로 폐이차전지 분리막 재활용
분리막 1m당 30g 탄소 배출 저감 효과
사업 초기 성장지원금·환경영향평가 지원

20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라잇루트 생산공장 한쪽에 SK아이이테크놀로지(IET)의 폐분리막이 쌓여 있다. 천안=나주예 기자

20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라잇루트 생산공장 한쪽에 SK아이이테크놀로지(IET)의 폐분리막이 쌓여 있다. 천안=나주예 기자


20일 찾은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기능성 원단 생산 스타트업 '라잇루트(Right Route)' 공장 한쪽에는 SK그룹 로고가 새겨진 이차전지 분리막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전기차 공장에나 있을 법한 분리막이 섬유 생산 공장에서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이차전지뿐만 아니라 기능성 원단의 주요 소재로 재활용되고 있어서다.

제조 과정에서 미세한 상처 등으로 상품성이 훼손돼 버려졌던 분리막을 재활용한 사례는 세계 최초다. 신민정(34) 라잇루트 대표는 "해마다 국내에서 나오는 이차전지 분리막 폐기물이 1만 톤에 달한다"며 "아무 쓰임새 없이 그대로 버려졌던 분리막을 투습과 방수가 모두 가능한 첨단 섬유 텍스닉(Texnic)으로 재가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30년 전 세계 분리막 쓰레기 6만t 넘지만…"재활용 시스템 없어"

20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에 위치한 라잇루트의 기능성 원단 텍스닉(TEXNIC) 생산공장. 천안=나주예 기자

20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에 위치한 라잇루트의 기능성 원단 텍스닉(TEXNIC) 생산공장. 천안=나주예 기자


리튬이온전지 분리막(LiBS)은 배터리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 소재다. 이는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져 배터리 양극과 음극의 접촉을 막는다. 문제는 전기차 배터리 안전을 위해 이 얇은 분리막에 작은 상처라도 나면 버려야 해 폐기물량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에너지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30년 예상되는 전 세계 분리막 생산량은 377억㎡로 이에 따른 폐기물도 약 6만4,000톤(t)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폐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도 약 3만3,930t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신 대표는 특히 분리막이 방수에 뛰어난 기능성 소재 '고어텍스'와 같은 미세다공형 구조라는 점에 주목했다. 미세다공은 수증기보다 크고 물방울보다 작아 기능성 섬유에 필요한 투습, 방수 기능에 뛰어나다. 때문에 땀이 잘 나오고 보온 기능도 뛰어나 등산복과 같은 기능성 의류로 재탄생할 가능성을 봤다. 신 대표는 "기능성 원단으로 재활용하면 분리막 1m당 30g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며 "연간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분리막으로 티셔츠 8억 장을 찍을 만큼 쓰임새가 좋다"고 강조했다.

텍스닉은 2022년 1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인 CES에서 웨어러블 테크놀로지 부문 혁신상을 받는 등 큰 수확을 이뤘다. 올해는 CES 2024에서 SK그룹 공식 현장 유니폼, 삼성물산 '빈폴' 골프웨어 등에 들어가는 한편 현재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와 제품 제작도 논의 중이다.

"버려지는 배터리 폐기물에 대한 고민 계속돼야"

20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텍스닉 생산공장에서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가 생산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천안=나주예 기자

20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텍스닉 생산공장에서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가 생산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천안=나주예 기자


라잇루트가 분리막 재활용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는 SK이노베이션의 도움이 컸다. 신 대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카이스트와 함께 2013년부터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양성 석사 과정인 'SEMBA' 3기를 마친 뒤 2020년 SK이노베이션·환경부의 '환경분야 소셜 비즈니스 발굴 공모전'에 당선돼 성장 지원금 2억 원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SK이노베이션의 환경 스타트업 진흥 프로그램(EGG) 사업 대상자로 뽑혀 10월 천안에 공장을 세우고 상업 생산에 들어갔다.

SK이노베이션은 소재사업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IET)의 충북 증평군 공장에서 미세 손상이 발생한 원단, 고객사 맞춤 제품을 제작하면서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원단 등을 모아서 라잇루트에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라잇루트의 해외 진출을 위해 SK이노베이션 내 역량을 활용, 세계 최고 품질 및 안전 전문 기관인 노르웨이 DNV의 전과정평가(LCA) 인증을 받도록 도왔다. 원료 수급부터 제조, 폐기에 이르는 제품 생애주기 전 단계의 환경 영향 측정·평가를 받은 덕분에 글로벌 기업과 협업에도 물꼬가 트였다.

라잇루트는 자동차 시트 등 텍스닉의 쓰임새를 늘리는 한편 폐배터리의 분리막 재활용 기술 연구개발(R&D)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폐배터리에서 나온 분리막은 소재 기능이나 색상 등이 달라져 추가 기술 개발이 필요하지만 최근 독일 배터리 업체와 관련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신 대표는 "전기차 생산 증가로 배터리 관련 폐기물도 늘고 있지만 재활용에 대한 고민은 이제 시작 단계"라며 "2030년까지 탄소 저감을 목표로 유럽에 공장을 짓고 폐분리막을 재탄생시키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IET)가 생산하는 배터리 분리막(LiBS) 제품. 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IET)가 생산하는 배터리 분리막(LiBS) 제품. SK이노베이션 제공



천안=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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