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내년 정부 예산의 재량지출을 10% 이상 감축해 건전재정 기조를 이어가는 것을 골자로 하는 ‘2025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을 확정했다. 인건비 등 경직적 예산과 달리 정책적 의지에 따라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예산은 최대한 줄이도록 각 부처에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다. 대신 연구∙개발(R&D), 저출산 대응 등 미래 세대와 관련된 투자는 늘리기로 했다.
건전재정은 윤석열 정부가 줄곧 내세워온 기조로 불요불급한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무리하게 쥐어짜다 보면 올해 R&D 예산 감축처럼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연구비 나눠먹기 등 카르텔 근절이 배경이었다고는 하나 예산이 줄어든 불과 몇 개월 새 연구 현장은 초토화된 상태다. 내년엔 대폭 확충하겠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시간이 생명인 R&D 특성상 1년의 공백은 만회하기 어려운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재량지출 감축 과정에서 이처럼 꼭 필요한 예산이 싹둑 잘려 나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쏟아낸 대규모 감세 정책과 병립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법인세 등 공격적인 감세로 세수 기반이 허약해진 와중에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감세 정책이 추가되는 상황이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완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확대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재정 실탄이 줄어들면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세수펑크(56조4,000억 원)로 국회를 통과한 지출 예산 중 45조7,000억 원을 집행하지 못했다. 줄이고 줄인 예산마저도 다 쓸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작년 4분기 정부의 성장 기여도가 ‘제로(0%포인트)’다.
그래 놓고 어제까지 이어진 24차례 민생토론회에서 약속한 재정 지출은 어림잡아 수백조 원에 달한다. 건전재정과 감세, 그리고 포퓰리즘이라는 하나같이 상충되는 정책들을 아무런 부작용 없이 모두 예산안에 끼워 넣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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