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생애 두 번째 총선을 앞둔 지민이에게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이구나. 올해 봄은 유난히 쌀쌀한 날이 많아 이모가 좋아하는 목련은 피려다 져버려서 아쉽네. 지민이가 머무르고 있는 제주도에는 봄이 당도한 지 오래겠지?
졸업을 앞두고 한 해 동안 너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결정을 이모는 응원한다. 지난 설에 만났을 때 너와 한 이야기가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어. 쳇바퀴를 도는 듯한 일상에서 벗어나 ‘통으로’ 멍때리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네 바람이 너무 와닿아서 이모는 마음이 좀 아팠단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어떤 시간이, 사실 그 사람의 내면에서는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시간일 수 있는데 한국 사회가 그런 시간을 허락하는 데 참 인색한 사회라서 말이야. 그런데 논다고 간 제주도에서 결국 또 일거리를 구했다지? 원래 목적 잊지 말고 틈틈이, 멍때리는 시간 갖고 있기를 바란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어떻게 ‘진화’할까
쉬라고 해 놓고 총선 이야기라니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니냐는 너의 명랑한 투덜거림이 들리는 것 같구나. 사실 이모는 노동 시간이 줄어야 하는 이유로 사람들이 각자 그리고 함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 외에도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행동할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도 들고 싶어. 예로부터 정치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 예컨대 왕족, 귀족, 양반, 그중에서도 남성들 소관이었지. 그들이 노예, 농노, 노비, 여성들의 노동에 기대어 살면서 모두의 삶을 결정짓는 자원 배분을 자신들 유리한 대로 처리한 역사를 너도 잘 알고 있지? 민주주의는 바로 노동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나아가 모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결정들을 하고자 한 데서 시작된 거야.
10여 일 앞으로 성큼 다가온 22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이런 면에서 여러모로 중요하다. 지금은 2016-17년 촛불 시위를 통해 확인한 한국 사회 변화의 희망을 구체적인 제도로 만들고 실행하는 것을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기에, 그리고 그건 바로 너희들의 시간일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에 그렇다.
너의 첫 선거였던 2020년 21대 총선은 희망의 구체적 실현으로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선거제도를 도입한 역사적 선거였지. 모든 당이 정당득표율의 절반에 해당하는 국회 의석수를 보장받는 이 제도는 여성의 대표성을 포함해 국회 내 다양성과 소수자 대표성을 증진시킬 것으로 기대되었다. 특정 세대, 특정 성별, 특정 지역, 특정 학력, 학벌, 직업이 과대 대표되고 있는 한국 의회 정치의 근본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된, 젠더적으로 봤을 때도 매우 중요한 진전이었지.
그러나 지금의 국민의힘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하겠다고 나서자 더불어민주당마저 편승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두 당이 비례대표마저 독식하게 된 황당한 선거가 되었다. 애초 도입 취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가 초래된 거야.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언론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또한 책임이 크다고 이모는 생각한다. 애초 첫 비례대표용 정당이 출현했을 때 그것이 헌정질서에 위배된다는 점을 지적한 언론은 거의 없었거든. ‘꼼수’라며 비판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는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로 수용하는 자세였지 있어서는 안 되는 일로 규탄하는 자세는 아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또한 막대한 국고보조금이 주어지는 ‘두 달짜리 임시 정당’의 등록을 허용함으로써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는 인식이 생겨나질 않은 거야. 그러니까 당시 언론과 중앙선관위가 한 일은 젠더적인 의도를 갖지는 않았을지 모르나 젠더적인 효과는 충분히 발휘한 거지. 결과적으로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지대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었으니까 말이야. 이런 이유로 이모는 21대 국회가 한 일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2017년 촛불시위를 통해 시민들이 갖게 된 변화에의 열망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국회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제도는 일단 한 번 만들어지면 예상치 않은 효과를 발휘하지. 이번 22대 총선도 이 제도로 선거를 치르기로 하면서 수많은 정당이 출현했다. 지리멸렬하니까 포기하는 대신 각 정당의 역사, 해 온 일, 추구하는 가치가 얼마나 일하는 이와 평등을 중시하며 당면한 복합적인 과제를 풀어나갈 역량이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보는 건 어떨까? 어떤 당이 국회에 들어오면 다른 당들과의 관계와 협상을 통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당이 들어오지 못하고 사라지면 대한민국 국회는 어떤 일을 아예 하지 않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미소지니 정치는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까
너는 촛불의 시간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두드러졌던 ‘젠더 이슈’가 이번 총선에서는 사라진 것 같아 속상하다고 했지. 그러나 젠더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이슈라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틀을 지은 기본 원리라서 단순히 사라지지는 않는단다. 두드러지지 않을 때에는 두드러지지 않는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까 이번 선거는 어떤 면에서 지독하게 ‘젠더적인’ 판이라고 할 수 있어. 2015년부터 한국 사회를 휩쓴 페미니즘 대중화, 촛불 이후 들어선 정부하에서 확산된 미투와 디지털 성착취물에 대한 고발 이후 너무도 강한 백래시 혹은 퇴행이 전면화된 선거판이라는 의미에서 말이야.
사실 범죄를 당했다는 일종의 피해 신고일 뿐인 미투와 ‘N번방 사건’ 활동이 이토록 강한 저항을 불러온 이유는 이를 통해 일상의 젠더 문화가 드러났기 때문이지. 2021년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대통령 선거 결과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2021년 보궐선거에서 모든 세대 중 가장 높은 비율로 국민의힘에 표를 준 20대 남성들은 ‘이대남’이 되었지. 국민의힘에도 더불어민주당에도 표를 주지 않은 비율이 가장 높았던 20대 여성들은 졸지에 ‘이대녀’가 되었지만 이에 대한 관심은 ‘이대남’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은 것이었어. 그후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대남’은 정치권의 구애 대상이 되었고, 그를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정치인이 한때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었으며, 이대남의 ‘깐부’가 되겠다며 그 어떤 설명도 없이 한 줄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지.
2022년 이태원 참사, 부산 서면 ‘돌려차기’ 폭행 및 강간살인 미수사건, 2023년 신림역, 서현역에서의 칼부림 사건, 신림동 공원 강간살인 사건, 진주 숏컷 여성 폭행 사건, 그리고 전국적으로 잇따라 일어나고 있지만 이제는 언론에 한 줄 오르내리지도 않는 이 수많은 폭력 사건들이 미소지니(misogyny·'여성혐오'의 원어로, 여성이 한 명의 인간이자 시민이 아니라 그저 ‘여자’로 환원되는 제도, 문화) 정치의 전면화와 무관할까? 우연히 일어났다고 간주되는 안전 사건, 개인 간 폭력이라고 여겨지는 사건들은 많은 경우 그것을 문화적으로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피해자는 당연히 여성들만이 아니지. 이런 사회는 많은 보통의 남성들도 결코 살기 좋은 사회일 수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소리를 덧붙이게 되는구나. 이모는 이런 노골적인 미소지니 정치가 받아들 성적표라는 점에서도 이번 선거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이번 선거에서 이런 사건들은 언급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지. 묻어둔 ‘험한 것’이 언제 출몰할지는 모르는 법이다, 우리의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
혹자는 총선은 대선이 아니라고, 지역의 일꾼을 뽑는 선거이니 대통령이나 당과는 무관하다는 소리를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란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자기 지역을 위해서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권한은 없거든. 오히려 국회의원이 속한 당의 정책이 각 지역구에 미칠 영향이 더 크다는 점에서 비례대표를 뽑을 때와 마찬가지로 당의 정책, 가치관, 당원들의 경향 및 태도를 잘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제까지 한 이야기가 이번 총선에서 지민이가 할 결정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럼 4월 10일 투표 후에 반갑게 만나자.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와 서한영교 작가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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