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 슬레이어" 셔피카 허드슨(Shafiqah Hudson, 1978.1.10~ 2024.2.15)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36세 흑인 여성 셔피카 허드슨(Shafiqah Hudson)은 2014년 6월 13일 트위터(X)에서 ‘#EndFathersDay(아버지의 날을 끝장내자)’란 해시태그를 단 이상한 글을 본다. 자칭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라는 필자는 “남자들이 우리를 강간하고 죽이는 것을 멈추면 ‘아버지의 날’을 인정하겠다”고 썼다. ‘아버지의 날(6월 셋째 일요일)’ 사흘 전이었고, 허드슨은 취업 면접을 본 뒤 귀가해 ‘실업자의 일상’ 즉 고양이와 놀며 트위터를 훑어보던 중이었다.
그는 반감과 함께 싸한 의심이 들었다고 한다. 세상 모든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그 과격하고 분열적인 주장은 자신이 이해하던 페미니즘이 아니었고 블랙 페미니즘과도 달랐다. 그는 해시태그 글들을 검색했다. “아버지의 날을 기리는 건 세상 모든 싱글맘들의 따귀를 때리는 짓이다”(@NayNayCantstop), “강간문화와 가부장제를 찬미하라고? 천만에”(@SharmekaMartin), “아버지의 날 대신 거세의 날이 필요해”(@Phoebe Kwon) 등등. 해시태그 글들은 거칠게 변주되고 거듭 리트윗되며 순식간에 뜨거운 이슈가 돼 있었다. 필자들은 흑인 여성 사진을 걸고 자기 소개란에 ‘퀴어+ 블랙+ 분노’ 같은 낱말들을 올려 두었지만, 트위터에서 나름 세월깨나 보낸 흑인 페미니스트인 그에겐 모두 낯선 계정들이었다.
보수 언론과 우파 이데올로그들은 경쟁적으로 저 해시태그를 소개하며 조롱했다. ‘워싱턴 이그재미너’의 애쉬 쇼(Ashe Schow)는 “페미니스트 분노 기계들의 최신작”이라고 조롱했고, 댄 맥로린(Dan McLaughlin)은 “진보주의의 문화적 궤적을 보여주는 깔끔한 삽화”라고 규정했다. ‘똑똑한 결혼(Marry Smart)’이란 책으로 '좋은 남편=여성의 성공' 등식을 설파하며 ‘프린스턴 맘’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수전 패턴(Susan Patton)은 폭스TV 토크쇼에 출연해 “그들은 아버지의 날이 아니라 모든 남성을 끝장내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드슨은 저 해시태그의 뿌리를 추적하는 한편 트위터 지인들과 함께 계정들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대부분 갓 개설된 계정이었고, 타인의 얼굴 사진을 도용한 이들도 있었고, 고향이라고 밝힌 미국 남부 지명의 철자를 틀리게 쓴 이도 있었다. 플로리다 남부에서 성장한 허드슨이 특히 주목한 건 그들이 흉내낸 엉터리 남부 방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토착영어(AAVE)였다. 허드슨은 곧장 대항 해시태그 ‘#YourSlipIsShowing(네 실수는 들통났어)’를 만들어 의심 계정들을 폭로하고 나섰다. 트위터 지인들과 생면부지의 트위터 이용자들, 흑인 페미니스트 작가 미키 켄들(Mikki Kendall)과 저밀라 르미유(Jamilah Lemieux) 등이 “좋아, 해보자”라며 잇달아 동참했다. 그들의 반격 덕에 ‘#End…’ 해시태그 계정들은 불과 몇 주 사이 대부분 사라졌다.
‘#End…’ 해시태그의 진앙지가 네오나치 성향의 극우 청년들의 근거지였던 익명의 이미지 기반 웹사이트 ‘4chan’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허드슨과 그의 사이버 동지들이었다. 6월 12일, ‘4chan’에 올라온, 싸우는 부모를 등진 채 귀를 막고 계단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사진과 함께 게시된 짤막한 글. “가정폭력과 부부강간, 아동학대, 간통 등은 대부분 남자, 곧 아버지에 의해 저질러진다. 그들의 존재를 기리는 건 가부장제라는 질병의 또 다른 증상일 뿐이며 진보 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자료나 양육비조차 부담하지 않는 그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허수아비 페미니스트(Straw Feminist)’라는 이름의 필자는 저 해시태그를 널리 퍼뜨려 달라고 선동했다.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라 번역되는 ‘스트로맨 오류(straw man fallacy)’는 논쟁 상대의 주장을 교묘히 왜곡해 인용한 뒤 그렇게 비튼 주장을 반박해 마치 상대를 꺾은 것처럼 꾸미는 논증의 오류 또는 반칙을 가리킨다. 자칭 엉터리(straw)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교묘히 왜곡해 퍼뜨림으로써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자고 선동한 거였다.
그렇게 거짓 해시태그 트윗을 퍼뜨린 이들이 4chan에 모여 주고받은 글들, 예컨대 “내 가짜 트윗을 보고 검둥이들(nigs) 수백 명이 덤벼들었어. 예상보다 훨씬 잘 먹히네”, “그들끼리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고 싶어” 등을 찾아내 폭로한 것도 허드슨과 그의 친구들이었다. 허드슨 등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트위터 본사는 철저히 방관-침묵했고, 거짓 트윗에 장단 맞춰 들썽댄 언론사와 언론인 누구도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거나 공개 사과하지 않았고, 진지한 반성 없이 사소한 장난이나 해프닝 쯤으로 치부하며 외면했다.
물론 그 사건이 더 거대한 파동, 예컨대 ‘거짓 뉴스’로 들썩이게 될 2016년 미국 대선과 소셜미디어 사태의 전조였다는 것, 이후 본격화한 ‘밈 전쟁(Meme War)’의 사실상 첫 전투였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은 진실이었다.
해시태그 ‘YourSlipisShowing’은 미국 남부 흑인들, 이를테면 할머니가 어린 손자의 부끄러운 실수나 잘못을 악의 없이 놀리거나 지적할 때 쓰는 관용어라고 한다. 해시태그를 만든 허드슨은 “지독한 악의와 인종차별에도 예의와 유머로 맞설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고 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한 거짓과 혐오, 여론 조작의 파괴적 심각성을 세상에 알려 바로잡고자 했던 트위터리언이자 무명 프리랜스 칼럼니스트였던 그가 실의와 가난, 오랜 병고 끝에 별세했다. 향년 46세.
해시태그는 미국의 오픈소스 활동가 크리스 메시나(Chris Messina, 1981~)가 “좁은 공간에 갇힌 좋은 생각들을 널리 퍼뜨리”고 “일시적이고 빠르게 바뀌는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007년 8월 트위터에 처음 소개, 그해 캘리포니아 산불 당시 ‘샌디에이고 화재’ 소식 해시태그로 대중화됐다. 해시태그는 2009년 이란 선거 혁명 등 일련의 사태와 근년의 미투 운동까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해시태그 액티비즘’ 즉 사이버 사회운동의 한 형식으로 정착했다.
해시태그를 악용하거나 여론을 조작 호도하는 사례는 이전에도 물론 없지 않았다. ‘아버지의 날’ 소동이 빚어지던 무렵에도 ‘비키니 브릿지(BikiniBridge)’란 해시태그, 즉 여성의 골반뼈 양쪽 튀어나온 부위에 비키니 수영복 하의가 걸쳐 하복부에 밀착되지 않고 벌어진 공간을 셀프 카메라로 촬영해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2014년 1월 ‘4chan’의 일부 이용자가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비키니 브릿지 작전’은 트위터 등을 통해 널리 전파돼 날씬함에 대한 선망과 강박을 조장했다. 심지어 거식증을 미화한 ‘트롤러(troller)’도 있었다. 북유럽 신화 속 괴물의 이름에서 유래한 사이버 용어 ‘트롤’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대개 거칠고 원색적인 표현으로 편견과 분열 등 부정적인 영향을 확산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2012년 한 여성 사진작가(Emma Arvida Bystrom)가 발표한 월경 여성들의 사진 시리즈를 계기로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서 생리에 대한 부정적 사회문화적 통념에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와중에 역시 4chan의 일부 여성혐오주의자들이 해시태그 ‘FreeBleeding 작전’으로 ‘생리대를 거부하는 지저분한 괴짜들= 페미니스트’의 이미지를 부각한 일이 있었다. 그 작전 역시 조작으로 밝혀졌지만, 오히려 그걸 계기로 생리에 대한 공개적 논의가 본격화했고 생리용품에 대한 소비세 철폐운동으로 이어진 예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날’은 이전의 ‘장난’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정치적인 데다 정교하고도 창의적인 조작이었다. 트롤들은 모두 흑인 페미니스트로 가장함으로써 페미니즘 진영으로부터 블랙 페미니즘을 소외시키고, 블랙 페미니즘 진영 내부의 분열과 와해를 조장하고자 했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로리 페니(Laurie Penny)는 그 무렵 가디언 칼럼에 사회운동 진영 내부의 이견과 내분은 결코 특별한 현상이 아니지만 “그런 긴장은 악용되기 쉽고, 트롤들은 현대 페미니즘 운동의 약한 신경을 건드려 주변부로 간주되는 여성들의 불만을 악용하는 데 능하다. 우리의 적들은 우리가 기대를 담아 예상해온 것보다 우리를 훨씬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고 썼다.
2014년 8월 본격화한 여성 인디게임 개발자 조에 퀸(Zoe Quinn) 등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마녀사냥 ‘#게이머게이트(Gamergate)’와 2016년 러시아발 미국 대선 온라인 여론조작 사태 등을 통해 트롤의 전술-전략이 얼마나 진화하고 조직화했는지, 그 파괴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일 수 있는지 입증됐다. 2014년 원년 허드슨의 동지인 흑인 여성주의 작가 겸 활동가 아이나사 크로켓(I’Nasah Crockett)은 2020년 abc 인터뷰에서 “그들도 학습해 온 것 같다.(…) 이제는 거짓 정보를 퍼붓듯이 쏟아내 물을 흐리면서도 진위와 출처를 확인할 시간조차 주지 않으려는 시도가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저 일련의 사태를 하위문화 집단 간 사소한 다툼쯤으로 치부하던 주류 언론과 미디어 학계가 사회병리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주목한 것도 2016년 대선 전후부터였다. 시라큐스대 온라인 윤리학과 교수인 휘트니 필립스가 2016년 대선과 미디어의 대응을 분석해 “미디어는 증오집단의 메시지를 증폭시키며 온라인 상의 악의적 수사를 실제 폭력적인 증오나 도발과 별개의 것으로 치부했다”고 분석한 건 2018년이었다. 2016년 대선 직전 러시아발 트롤 계정들이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권자를 “레이저처럼 정밀하게 표적화”해 여론 조작과 투표 방해 행위를 일삼은 사실도 2018년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 수사로 밝혀졌다. 필립스는 “만일 당신의 육체가 인종차별적 폭력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면, 또 당신의 외모나 정체성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위협을 받은 적이 없다면, 그런 공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 역시 줄어들 것”이라고 썼다. 그는 2014년 ‘#YourSlipIsShowing’ 해시태그 여성들을 주목하며 “그들은 그것이 장난기 어린 트롤링에 불과한 게 아니란 걸 본능적으로 이해했고,(…) 대다수 사람들은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썼다.
MIT 연구진은 2013년 보스턴마라톤 폭탄 테러사건 직후 관련 트윗 12만 6,000여 건을 분석, 허위 사실을 담은 가짜 뉴스가 신빙성 있는 근거를 밝힌 진짜 뉴스보다 70% 이상 많이 리트윗되었고 확산 속도도 약 6배 빨랐다는 요지의 논문을 2018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모든 범주의 정보에서 거짓이 진실보다 훨씬 빨리 광범위하게 확산됐지만, 그 효과는 테러나 자연재해 과학, 도시괴담, 금융정보에 비해 정치뉴스 분야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허위 뉴스를 퍼뜨린 주요 주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봇(Bot, 반복작업을 자동 수행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아니라 평범한 사용자들이었다며 “거짓 뉴스가 상대적으로 더 새롭고, 그래서 더 전문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라 추정했다.
허드슨이 거의 잊히다시피 했던 자신의 해시태그를 방송을 통해 다시 만난 건 2017년 11월 케이블방송 TBS 심야토크쇼 ‘Full Frontal with Samantha Bee’에서였다. 진행자 사만다 비는 2016년 대선과 흑인 유권자들을 겨냥한 가짜뉴스 공세의 실태를 분석하며 2014년 ‘#Your…’ 사례를 소개하고 당시의 주역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너무 쪼들려 유료 케이블방송조차 신청하지 못한 채 지내던 허드슨은 한 지인이 캡처한 영상 사진을 통해 방송 사실을 알게 됐다. 2019년 ‘Slate’ 인터뷰에서 그는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깊은 슬픔, 해시태그를 만들 당시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가 그렇게 엄청난 지경으로 악화하리라 짐작하지 못한 데 대한 자책, 그 사태를 어떻게 긍정적인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등으로 마음이 복잡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물론 토크쇼 진행자가 찬사를 보낸 건 ‘흑인 여성들’이었고 허드슨이나 크로켓 등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셔피나 허드슨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에서 무술 강사 겸 작가 아버지와 컴퓨터 엔지니어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8세 무렵 부모 이혼 후 어머니를 따라 플로리다 남부로 이주해 성장했다. 팜비치 카운티 예술학교를 거쳐 2000년 뉴욕 호바트&윌리엄스미스 칼리지(아프리카학 전공 정치학 부전공)를 졸업한 뒤 여러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며 인종-여성 문제와 관련한 문화 비평 칼럼니스트로서 글을 썼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많지 않았고 그는 거의 평생 안정적인 수입원 없이 지냈다. 가족과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만성 염증성 장질환인 크론(Crohn)병을 앓았고 코비드에 감염된 뒤 호흡기 질환으로도 고생했다고 한다. 그에겐 의료보험이 없었고 자궁근종이 발견되고도 한동안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다 트위터 지인들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숨지기 닷새 전 트위터(@sassycrass)에 그는 “허공에 대고 야옹대고 있는 느낌이다. 비는 내리고 있고, 나는 익사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중이다”란 글을 남겼다. "어쨌든 지금 내게 간절히 필요한 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매일 아침 상기시키는 걸 멈추는 것이다. 나는 그 세상에서 말 그대로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있다. 잘 살아보겠다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 (...) 그러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며 '근데 내가 왜 여기서 버티려고 애쓰고 있지?'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모두'의 페미니즘에서 누락된 목소리'(원제: Hood Feminism: Notes from the Women White Feminists Forgot, 2020)란 책을 쓴 허드슨의 원년 동지 미키 켄들은 NYT 전화 인터뷰에서 “세상은 피카(Fiqah, 셔피카의 애칭)에게 큰 빚을 졌다. 불행히도 그는 가난하게 살다 겁에 질린 채 고통스럽고 고독하게 숨져 간 많은 흑인 여성 운동가들의 오랜 전통의 일부가 됐다”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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