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정파적 일정과 행사 자제해야
선거 의식한 급조된 정책 부작용 많아
대통령과 당대표, 본분과 품격을 지켜야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우리 대통령은 단임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자기 선거운동을 할 일이 없을뿐더러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여당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는 것도 금지된다. 반면에 미국은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본인이 재선에 나서는 경우에는 당연히 선거운동을 할뿐더러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자기 당 후보를 위해 유세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현직 대통령이 자기 당의 의원이나 주지사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에 나서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 대신 상원에서 사회를 보는 것 외에는 고유 업무가 없는 부통령이 그런 역할을 한다. 선거운동이 아닌 정치적 집회에도 대통령이 직접 참가하기보다는 부통령이 대신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은 워낙 바쁠뿐더러 대통령이 정파적으로 보이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정당에는 당대표라는 직위가 없어서 부통령이 선거운동을 하지만 우리는 여당 대표가 그런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구태여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이 선거개입이라는 오해를 살 만한 행보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여당이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한다거나, 여당에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이나 국책사업을 선거를 앞두고 내세우는 것이 그러한 경우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산에 와서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서 논란을 빚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재건축 규제완화에서 케이블카 허가에 이르는 많은 약속을 늘어놓아서 일일이 기억도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발상도 그런 정책이 여당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밀어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선거를 앞둔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가 선거에 항상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에 내려가서 가덕도신공항을 약속했음에도 민주당은 부산시장 선거에서 패배했다. 지금 뜨거운 이슈가 되어 있는 의대정원 2,000명 증가도 마찬가지다. 의대 정원을 늘려서 의사 공급을 늘리는 문제는 여러 가지 복잡한 변수가 있는 고등방정식 같은 이슈인데, 총선을 앞두고 일선 검사가 수사를 하듯이 밀어붙이고 있으니 탈이 나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반면에 새누리당이 박근혜 비대위원장 중심으로 2012년 총선을 치를 때 이명박 대통령은 뉴스에 나오지도 않았고, 덕분에 여당은 경쾌하게 선거에서 승리했다. 2012년 총선은 평가가 좋지 않은 대통령을 둔 여당이 승리하는 방식을 보여준 모범사례였으나 지금 국민의힘은 그것마저 잊은 듯하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소신 있고 유능한 각료와 참모를 두고 이들과 함께 국정을 고민하는 것이다. 시간을 쪼개서 새로 나온 책도 읽고 나름대로 깊은 사고(思考)를 한 대통령이 대체로 성공했음은 역사가 웅변으로 증명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어젠다를 전파하는 중요한 수단은 연설과 기자회견이다. 미국에선 연설과 기자회견을 잘한 대통령이 성공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통령은 상징성이 있는 행사에 참석하거나 그런 면을 고려해서 일정을 잡기도 하는데, 이 역시 국정철학을 전파하고 국민들과 소통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대통령이나 부통령이 슈퍼마켓에 가서 브로콜리 가격을 묻거나 앞치마 두르고 몇 시간 걸려서 피자를 굽지는 않는다. 대통령이든 당대표든 모두가 자기 본분은 물론이고 품격마저 잃어버린 우리 정치의 끝은 도무지 어디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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