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대책으로 내세운 부담금 폐지
시민들 "그거 없어진다고 큰 효과 있을까"
부담금 혜택 영화계는 "협의도 없이" 불만
"예? 500원이요?"
1일 오후 서울 용산역CGV. 친구와 영화를 보러 온 직장인 조모(26)씨가 덤덤하게 되물었다. "정부가 부담금을 폐지해 영화 티켓값을 500원 깎아준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돌아온 답이다. 그는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한 달에 두세 번 영화관을 찾던 나름 성실한 영화팬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활성화 이후 거의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이미 영화관에서 마음이 떠난 조씨의 발길을 500원이 돌려세울 수 있을까? 그는 전혀 아니라고 말했다. 조씨는 "밥값만 2만 원에 가까워지는데 500원으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발상부터가 신기하다"며 웃었다.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며 영화관람료에 징수하던 부과금을 폐지하기로 했지만, 부담금 폐지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는 정작 영화 관람객들에게 크게 다가가지 못하는 분위기다. 반면 이 소액이 누적되어 형성되는 큰 '기금'의 혜택을 받던 영화계는 부담금 폐지 소식에 크게 당황하고 있다. 독립·예술 영화 등의 지원이 끊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500원 인하, 효과 있을까요?
정부는 지난달 27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그림자 조세'를 전면 정비하겠다며 폐지 대상에 '영화관람료 부과금'을 포함시켰다. 영화관람료 가액의 3%를 징수하는데, 입장권이 1만5,000원이면 약 500원이 부과금으로 책정되는 식이다. 정부는 이런 그림자 조세를 폐지함으로써 국민과 기업의 짐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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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에게 효과를 물었더니 큰 공감이 안 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500원 정도는 영화관 측의 요금 조정 한 번으로 인하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거다. 정말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듄: 파트2'를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는 유모(26)씨는 "마트에서 채소 가격이 두 배 이상 치솟았는데, 티켓값이 500원 떨어진다고 영화관을 올 것 같진 않다"고 툴툴댔다. 가족들과 함께 '파묘'를 보러 왔다는 이모(50)씨도 "괜히 표몰이를 하는 것 같다"며 회의적이었다.
영화관 입장도 애매하다. 부과금을 폐지하려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폐지를 한다 해도 티켓값을 인하할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일단 정부가 발표부터 했으니 눈치는 봐야 하고, 법이 처리되는 동안엔 요금을 올리기도 눈치가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깎으라는 신호인지 파악이 안 된다"며 "500원을 인하해도 (관객 유인)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은 "여전히 코로나 때 누적된 적자가 크다"며 "부담금이 사라지면 수익성이 개선될 수는 있겠지만 티켓값 인하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영화 지원은 어쩌란 말인가요?
부담금 혜택을 보던 영화계는 불안에 떤다. 3% 부과금은 영화발전기금 재원의 대부분을 차지해 왔다. 이렇게 모인 영화발전기금은 17년 동안 독립·예술 영화, 영화제 등 영화산업 진흥을 위해 쓰였다. 부과금 폐지가 영화발전기금 축소로 이어지고, 영화산업 위축까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영화발전기금이 불안정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협의 없이 폐지부터 할 줄은 몰랐다"며 "그간 정부가 영화계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해 온 만큼 불안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일반 재정으로 공백을 메꾼다는 입장이지만, 걱정은 그대로다. 구체적 계획도 없고, 그간 영화 관련 예산이 쪼그라들 때마다 정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영화진흥위원회 예산은 총 734억 원으로 지난해(850억 원)보다 100억 원 넘게 줄었다. 특히 12억 원에 달하던 지역영화문화활성화 지원 예산이 폐지되고, 영화제 지원 예산도 절반 이상 줄었다. 이동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재원을 어디서 가져올지 계획부터 확정했어야 한다"며 "산업이 침체된 시기에 이런 발표로 사기마저 떨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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