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주장하다 불법촬영 시도까지
극단의 정치화에 자극적 영상 각광
"음모론 범람... 유권자 선택 훼손해"
“여기 보면 이분이 현장에서 절취선을 잘라서 표를 (조작했다)… 어떤 사람이 이랬는지 국민들께 보여드려야죠.”
3월 중순 한 유튜브 채널에는 인천 계양구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찾은 한 남성이 직원들과 실랑이하는 모습을 찍은 실시간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 속 직원을 만나게 해달라”던 그는 촬영을 제지당하자, 이내 “부정선거”라고 소리쳤다. 영상 게재 2주 뒤 이 유튜버는 전국 각지 사전투표소와 개표소에 침입해 직접 카메라를 불법 설치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제 막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간 4·10 총선이 또다시 ‘음모론’으로 얼룩질 위기에 처했다. 벌써부터 투표조작설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이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건 돈이 되기 때문. 극단의 진영 논리가 굳어지면서 “상대편을 죽이기 위한” 음모론에 쏟아지는 관심은 상상 이상이다. 그럴수록 유권자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의회정치의 요체인 선거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정선거" 외치던 유튜버, 실행범 됐다
인천 논현경찰서는 서울, 부산, 인천 등 총선 사전투표소 40여 곳에 몰래 들어가 카메라를 설치한 40대 유튜버 한모씨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및 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31일 구속했다. 경남 양산 사전투표소 4곳에 카메라 설치를 도운 채널 구독자 70대도 불구속 입건됐다.
“선관위가 투표자 수를 속이는 것 같아 확인하려고” 범행했다는 게 한씨의 변이다. 정말 그럴까. 그가 내세운 ‘부정선거 음모론’은 사실 몇 번이나 써먹은 소재였다. 한씨는 2022년 대선과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당시에도 카메라를 설치해 사전투표소 내부를 촬영했다. 이때 올린 영상에서도 그는 선관위가 발표한 개표 인원과 자신이 설치한 카메라 영상 속 투표 인원이 다르다는 주장을 되뇌었다. 폐기된 투표용지를 찾겠다며 반려견을 훈련시키거나, 지역 선관위 사무실을 방문해 욕설을 하는 영상도 올렸다.
한씨만이 아니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투표 음모론 영상은 부쩍 자주 노출되고 있다. 한 보수성향 유튜버는 “부정선거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접수했고, 이를 대통령이 직접 봤다는 얘기를 녹취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이 자작극이라는 음모론 역시 다시 온라인 여론의 관심사가 됐다.
"투표 임박해 검증 어려운 틈 노려"
물론 근거는 없다. 그런데 실체적 진실을 금세 확인하기도 어렵다. 또 내선번호로 전화를 걸어 당황한 직원 반응을 편집해 증거로 포장하는 등 자극적이다. 유튜버들은 이 지점을 노린다. 상대 진영에 타격을 주고, 선거에 져도 저항의 근거가 되는 음모론에 지지자들은 열광한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투표일이 임박할수록 검증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더 정교하고 자극적 음모론이 판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극렬 지지자 일부가 다른 유사 채널의 스트리밍 댓글로 영상을 퍼다 나르면 특정 이슈가 유행처럼 번져가는 파급력도 갖췄다. 이들이 하나의 음모론에 매달리기보다 여러 의혹을 제기하고 가지치기처럼 재생산 구조를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만있어도 돈벌이 창구가 계속 늘어나는 식이다.
음모론에 기댄 가짜뉴스의 가장 무서운 점은 유권자의 공정한 선택을 방해한다는 데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검증이 어려운 극단적 주장은 자체로 유권자들을 피곤하게 한다”며 “특히 투표 경험이 적은 젊은 층이 (음모론에) 휘둘리면 거짓 주장을 믿거나 투표를 포기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