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박민 KBS 사장 취임을 앞두고 ‘우파 중심 인사 단행’ 등을 주문한 대외비 문건이 공개됐다. 문건을 만든 주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과거 정권 차원에서 행해졌던 방송 장악 시나리오가 또다시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짙다.
그제 MBC 스트레이트가 보도한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제목의 KBS 대외비 문건을 보면, ‘사장 제청 즉시 챙겨야 할 긴급 현안’으로 ‘국민 신뢰 상실에 대한 진정성 있는 대국민 담화(사과) 준비’를 제시하고 있다. 또 ‘사장 취임 즉시 추진해야 할 현안’으로는 ‘임원, 센터장, 실국장 인사를 통해 조직 장악’을 제안했는데 특히 ‘우파 중심으로’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보도국장 등 5명을 사장 의지대로 임명하되, 임명동의를 받지 못할 경우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발령을 강행하도록 제안하는 부분도 있다.
박 사장은 지난해 11월 취임 후 문건 내용과 일치되는 조치들을 실행했다. 문건에는 “신임 박민 사장 입장에서는 지금이 바로 KBS를 ‘파괴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박 사장은 취임 다음 날 "파괴적 혁신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말했다.
이 문건이 내부에서 작성됐어도 심각한 언론자유 훼손이지만, 외부에서 작성해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면 처벌 대상이 되는 불법에 해당한다.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MBC 정상화’ 문건을 만든 적이 있고, 2017년 문재인 정부 때도 더불어민주당 워크숍 행사에 ‘방송 장악 문건’이 등장해 논란이 됐다. 2010년 문건은 공소시효 문제로 처벌을 면했으나, 민주당 문건은 지난해 고대영 전 KBS 사장과 김장겸 전 MBC 사장의 고소로 관련자들이 직권남용 혐의 수사를 받고 있다.
KBS는 “경영진이나 간부들에게 보고되거나 공유된 사실이 전혀 없는 문건”이라고 했으나 그대로 믿긴 어렵다. MBC는 “고위급 간부 일부가 업무 참고용으로 공유하고 있는 문건”이라고 보도했고, 언론노조 KBS본부는 “연루 인원을 끝까지 밝혀내겠다”고 했다. 결국 수사로 밝혀질 가능성이 크지만, KBS가 먼저 진실한 설명을 하는 게 국민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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