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논의 날짜 의제까지 전부 공개
논리적 우위 자신감 기반해 의사들 압박
전공의 이탈 장기화 땐 강경 대응 시사
윤석열 대통령은 1일 51분에 달하는 대국민 담화의 절반가량을 의대 증원 논의 과정과 2,000명 산출 근거 설명에 할애했다. 그간 정부가 밝혀 온 증원 논리를 빠짐없이 망라해 집대성하다시피 했다. 의사들이 내세운 ‘증원 백지화’ 요구를 논박함으로써 향후 정부 대응에 정당성과 명분을 확보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렇기에 의사 집단행동을 ‘카르텔’로 규정한 대목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다만 윤 대통령 담화 직후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숫자에 매몰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결이 다른 입장을 냈고,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한 위원장 발언을 표현까지 그대로 좇은 입장을 내며 증원 인원 조정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2000명은 최소 규모” 27분간 증원 근거 설명
이날 윤 대통령은 “2,000명이 최소 증원 규모”라며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를 무려 27분 동안 조목조목 짚었다. 공인된 ‘의사 수 추계 연구’가 공통적으로 2035년 의사 1만 명 부족을 진단했다는 사실을 밑바탕에 두고,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의료수요 증가, 의사들의 고령화 및 근로시간 감소, 수억 원 연봉에도 의사 구인난을 겪는 지방의료원의 현실 등을 구체적 수치로 제시했다. 보건복지부·대한의사협회(의협)가 꾸린 ‘의료현안협의체’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등에서 지난해 1월부터 1년여간 37차례에 걸쳐 의대 증원이 논의된 과정도 날짜와 회차, 핵심 의제까지 낱낱이 공개했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가 증원 규모를 줄여야 하는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외견상 의사들 요구대로 의대 증원 규모 또한 의정 협상 의제로 올릴 수 있다는 발언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논리 싸움에서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하며 ‘2,000명 증원’ 방침에 재차 쐐기를 박은 것으로 해석됐다.
다만 한 위원장의 발언이 나온 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KBS에 출연해 “2,000명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의대 증원 규모를 포함해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밝히면서 대통령실이 의대 증원 규모에 있어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를 뒀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의사들과 소통은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공을 의사들에게 넘겼다”며 “의사들이 무조건 반대가 아닌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더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의사=카르텔 규정… ‘법과 원칙’ 재확인
윤 대통령은 에둘러 가지 않았다. 담화문 도입부부터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가 장래 수입 감소를 걱정하는 것이라면 결코 그렇지 않다”면서 향후 의료산업 성장 가능성과 수익 창출 기회를 소개했다. 전공의 집단사직이 ‘기대 수익’ 때문에 벌어진, 대의명분 없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직격한 것이다. 의료 공백 장기화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에게 의사들 주장의 부당성을 환기해 의대 증원 지지 여론을 굳히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의사 집단행동을 ‘카르텔’로 규정한 것은 향후 정부 대응 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운송거부사태, 일부 건설노조의 폭력행위, 사교육시장 등 그간 자신이 카르텔로 지목한 사례들을 거론하면서 “국민의 보편적 이익에 반하는 기득권 카르텔과 타협하고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가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갈수록 공고해졌다”고도 했다. 의사들이 기어이 정부 정책을 뒤집으려 한다면 지금보다 한층 더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우회적 경고 메시지인 셈이다.
전공의 배제한 의료개혁 추진 가능성도
윤 대통령은 ‘엄정한 법 집행’이라는 대원칙을 양보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전공의 8,800명에게 면허정지 행정처분도 절차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선처하거나 구제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현재 행정처분은 의정 대화 물꼬를 트기 위해 잠정 보류된 상태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 전공의 복귀를 기한 없이 기다릴 수는 없으니 의사들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행정처분 절차 개시 시점이 정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 이유에서 정부가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를 배제한 채 의료체계 개편을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대학별 의대 정원 배정을 마치고 내년도 대학입시전형 준비에 들어간 상황에서 의사들이 의대 증원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며 “대통령이 기본 원칙을 강조하고 정부 방침을 확고히 한 점에 비춰 볼 때 현재 상태에서 의료개혁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국민, 의료계, 정부가 참여하는 의료개혁을 위한 사회적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점도 이러한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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