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짧은 시 모음집
‘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
편집자주
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아내의 닳은 손등을/오긋이 쥐고 걸었다/옛날엔 캠퍼스 커플/지금은 복지관 커플”
올해 정년 퇴임을 앞둔 교사 성백광(63)씨가 쓴 시 ‘동행’입니다. 한국시인협회와 대한노인회가 공동으로 연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죠.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든지 투고가 가능한 이 공모전에는 한 달 사이 5,800여 편의 작품이 쏟아졌습니다. 문학세계사에서는 수상작을 포함한 100편을 모아 ‘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올해 초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 노인들의 실버 센류(정형시) 모음집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을 떠올리게 하는 짧은 시들에는 한국 노인만의 삶이 녹아 있습니다. 대학에서 만난 아내와 지금껏 살고 있다는 성씨의 ‘동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수상을 탄 정인숙(65)씨의 ‘로맨스 그레이’도 복지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복지관 댄스 교실/짝궁 손 터치에 발그레 홍당무 꽃”이라는 시를 읽다 보면 ‘노인의 공간’에 대해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물론 어르신들의 짧은 시가 그리는 노년의 풍경은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명문 공과대학 수석 졸업생인 남편마저도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앱)의 사용법을 몰라 끝내 거리로 택시를 잡으러 나서야 하는 노부부. 한때는 기세등등한 호랑이였지만 지금은 세 평짜리 요양원 방 안에서 가만히 지내야 하는 아버지. 또 홀로 지내는 요양병원에서도 “자식들에게 밥 먹일 생각만” 하는 치매 할머니까지.
책의 제목은 70세의 김행선씨가 쓴 ‘봄날’에서 따왔습니다. “죽음의 길은 멀고도 가깝다/어머니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나를 돌아본다/아! 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이라는 그의 시를 완연한 봄날이 찾아온 오늘, 입안에서 오래오래 곱씹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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