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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재선충병 3차 팬데믹... 조용한 산불처럼 소나무숲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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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재선충병 3차 팬데믹... 조용한 산불처럼 소나무숲 말라간다

입력
2024.04.05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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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경주 소나무재선충병 극심 현장 르포]
기온 상승에 재선충병 창궐할 조건 형성
경주 명소 토함산, 산자락이 누렇게 변해
소나무 고사로 여름철 산사태 우려 증폭
"소나무숲 사라지기 전에 비상 대응을"

지난 1일 경주시 감포읍의 한 야산에 재선충병에 걸려 잿빛으로 변한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녹색연합 제공

지난 1일 경주시 감포읍의 한 야산에 재선충병에 걸려 잿빛으로 변한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녹색연합 제공

지난 1일 찾아간 경북 경주시 감포읍 야산은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의 무덤 같았다. 진한 초록빛이었던 솔가지는 단풍이 든 것처럼 적갈색으로 변했고, 방치된 지 오래된 나무는 하얗게 질린 채 무너지고 있었다. 재선충이 소나무를 갉아먹으며 수분과 양분의 이동 통로를 막아 시들게 만든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피가 말라죽어가는 셈이다.

재선충병은 흔히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지만 이제 더는 정확한 비유가 아니다. 에이즈는 치료제 개발로 만성질환에 가까워졌지만, 재선충은 감염된 소나무를 3개월 안에 100% 고사시킨다. 이날 둘러본 경북 경주·포항 일대에선 이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소나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경주국립공원 내 토함산 일대는 재선충병 위험이 턱밑까지 다다랐다. 불국사 앞 공영주차장 인근을 비롯한 낮은 산지는 누렇게 변해가는 소나무가 지천이었다. 경주시 관계자는 “토함산은 활엽수가 더 많아서 재선충병 위험에서 약간 비켜나 있긴 하지만 산 아래쪽에는 감염 의심목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라고 설명했다. 포항 호미곶 해안도로에 아름다움을 더하던 곰솔(해송)도 누군가가 잡아뗀 듯 가지가 떨어져 있었다.

지난 1일 경주 불국사 공영주차장 앞에 재선충병이 의심되는 갈색 소나무가 보인다. 녹색연합 제공

지난 1일 경주 불국사 공영주차장 앞에 재선충병이 의심되는 갈색 소나무가 보인다. 녹색연합 제공

영남 지역은 이처럼 소나무재선충병 ‘3차 팬데믹(대유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21년만 해도 31만 그루였던 피해목 수는 2022년 38만 그루, 지난해 107만 그루로 늘었다. 유행의 불길이 잡히지 않자 산림청은 지난 1월 재선충병 유행 극심 단계인 6개 지역(대구, 성주, 고령, 안동, 포항, 밀양) 4만483ha를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했다.

재선충병은 2007년과 2014년에도 소나무 숲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이번 유행은 1·2차 팬데믹과는 사뭇 다르다. 기후변화로 재선충이 더 쉽게 퍼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날개가 없는 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와 같은 매개충을 타고 이동하는데, 기온 상승으로 매개충의 우화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성충으로 지내는 기간도 길어진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북방수염하늘소의 우화 시기는 2017년 4월 27일에서 지난해 4월 19일로, 솔수염하늘소는 5월 16일에서 5월 11일로 앞당겨졌다.

건조한 기후 탓에 산불이 잦아진 것도 팬데믹을 키운 원인이다. 불에 탄 나무는 재선충과 매개충이 알을 낳고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이 발생하면 피해지의 매개충 밀도가 14배 증가한다. 반면 소나무는 기후변화에 스트레스를 받아 점점 약해지고 있다.

지난 1일 포항 호미곶 인근 해안도로에 방치된 재선충병 감염목이 부서지고 있다. 포항=신혜정 기자

지난 1일 포항 호미곶 인근 해안도로에 방치된 재선충병 감염목이 부서지고 있다. 포항=신혜정 기자

재선충병 피해는 인간에게도 직접적인 위험이다. 현장에 동행한 김원호 녹색연합 활동가는 “많은 소나무들이 고사한 상태라 당장 올여름 태풍과 폭우 등으로 더 큰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의 흙이 떨어지지 않도록 뿌리로 잡아주던 건강한 소나무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 소나무숲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돈다. 재선충이 일본에서 건너온 1988년부터 2022년까지 잘려나간 피해목은 1,500만 그루가 넘는다. 더욱이 산림청과 피해 지방자치단체들은 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활엽수로 수종 전환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감염되지 않은 소나무까지 잘려나갈 수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일부 소나무를 남기는 것보다는 재건축처럼 모두베기를 통해 전부 바꾸는 것이 효율적일 것으로 판단해 그렇게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일 방문한 경주 감포읍 야산 절반이 재선충병 감염목으로 뒤덮였다(위). 네이버 지도에서 같은 위치의 로드뷰를 확인하니 2022년 10월만 해도 거의 대부분의 소나무가 푸른빛을 유지하고 있다(아래). 신혜정 기자, 네이버 지도 캡처

지난 1일 방문한 경주 감포읍 야산 절반이 재선충병 감염목으로 뒤덮였다(위). 네이버 지도에서 같은 위치의 로드뷰를 확인하니 2022년 10월만 해도 거의 대부분의 소나무가 푸른빛을 유지하고 있다(아래). 신혜정 기자, 네이버 지도 캡처

유행 초반부터 적극 방제를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도 있다. 박일권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재선충병 발생이 줄어들었던 2021년도에 정부가 방제 예산을 줄이고 관리가 느슨해지자 최근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최근 몇 년 사이 관련 연구 예산도 줄어 해결책 마련을 위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7년 814억 원이었던 방제 예산은 2022년 559억 원으로 줄었다. 올해 예산은 805억 원이 책정됐는데 당초 산림청이 계획한 1,200억 원에서 약 400억 원이 삭감됐다.

김원호 활동가는 “산림황폐화가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이번 총선에서 재선충병 극심 지역 후보들조차 관련 공약은커녕 기후공약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감염목을 벌채하는 단선적 방법도 한계와 부작용이 있는 만큼 사회적 논의와 공동 대응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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