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빅5 병원 근무 간호사 3명 인터뷰]
"수술장 보조·드레싱 등 전공의 업무까지"
"환자 감소로 경영난에 무급휴가 강요해"
"의료공백 장기화하면 간호사 이탈 늘 것"
"병원에 남으면 일 폭탄, 병원을 떠나면 빚 폭탄인데, 왜 저희가 피해를 입어야 하나요."
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13년 차 간호사 함은지(36·가명)씨는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에 울분을 토했다.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7주 차에 접어들면서 간호사 업무량은 폭증했다. 설상가상 입원환자가 줄면서 수백억 원의 적자가 발생한 병원은 간호사들에게 무급휴가를 종용하고 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의료현장을 지켜온 간호사들마저 이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하루빨리 의정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의료 시스템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수술장 보조·드레싱 등 전공의 업무 떠안아
지난 2월 20일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간호사들은 고스란히 업무를 떠안았다.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근무 중인 30년 경력의 임수연(가명) 간호사는 "간호사가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라며 "수술장 보조나 검사 시술 보조 등 전공의 업무까지 맡아야 하고, 일이 몰리는 다른 부서 파견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출퇴근 시간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의료 사고 위험도 크다. 정부는 의료공백에 대응해 2월 27일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진료지원(PA)간호사 업무를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가칭)·일반간호사로 나눠 허용했다. 98개 의사 업무 중 9개를 제외한 89개 업무를 간호사 업무로 조정했다.
함 간호사는 "원래 중증도가 높은 욕창 드레싱 업무는 의사가 해야 하는데 지금은 간호사가 한다"라며 "문제가 생기면 저희한테 책임이 전가될 수 있어 불안하다"고 했다. 또 "아무리 정부 지침이어도 의사 업무를 대신하다가 환자에게 문제가 생겼을 경우 법적 보장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박주은(27·가명)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는 "최근 큰 정맥까지 삽입돼 있는 관을 제거할 여력이 안 돼 관을 방치한 채 환자를 퇴원시키는 일이 있었다"며 "감염 위험이 높아 조심해야 하는데, 의사가 없어 관을 제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예민해진 의사와 환자 고충도 간호사들의 몫이다. 간호사들은 입원 전 환자에게 수술 연기를 전달해야 하거나 하루가 급한 중증환자에게 진료 대기를 안내하고 있다. 임 간호사는 "화가 난 환자들 욕받이가 되지만, 그들의 절박한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감내하려 한다"고 감정을 억눌렀다. 그는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는 간호사들이 잘 모른다고 하면 면박을 주는 교수들이 많다"며 "예전에는 전공의와 소통하던 교수들이 간호사들과 직접 소통하다 보니 서로 힘든 점이 많다"고 털어놨다.
수백억 원대 적자에...무급휴가 내몰려
의료공백이 길어지면서 입원환자가 급감하고 병동이 텅텅 비면서 국내 5대 상급종합병원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2월 20일부터 3월 30일까지 40일간 의료분야 순손실이 511억 원에 달한다. 신촌세브란스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이 경영난을 이유로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병원들은 적자를 메우려 간호사와 병원 직원 인건비 감축에 나섰다. 간호사들의 무급휴가와 연차 등도 강요하고 있다. 박 간호사는 "4명이 한 조로 근무하는데 한 명씩 번갈아가면서 연차를 사용하고 있다"며 "가뜩이나 업무가 늘었는데 무급휴가를 가면 남은 이들의 업무강도는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무급휴가로 생계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함 간호사는 "병원 근처에서 자취하는 간호사들은 월세가 비싸 급여를 못 받으면 당장 갈 곳이 없어진다"며 "관리자가 무급휴가를 강제하기도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간호사들이 많다"고 했다. 박 간호사도 "생계 걱정으로 무급휴가를 안 쓰면 병상이 유지되는 다른 부서로 파견을 보낸다"며 "다른 부서로 가면 업무가 달라 업무 부담이나 강도가 훨씬 높다"고 말했다. 임 간호사는 "당장 급여로 대출이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간호사들은 늘어난 업무에도 아무 소리 못하고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의료공백이 길어지면서 간호사 이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약회사 등 일반 의료 관련 회사로 이직하거나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함 간호사는 "해외는 간호사들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하고 경력을 인정해주지만, 국내는 '티슈 노동자'라고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것 같다"며 "주변에 그만두면 절대 병원으로는 안 가겠다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임 간호사도 "숙련된 간호사로 일하려면 거의 1년이 걸린다"며 "간호사를 새로 채용해도 병원 정상화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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