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명 희생 모스크바 테러, 그 후 2주
용의자 고문당해도 "괴물에 대접하랴"
제1당 대표는 "사형 부활 검토" 공언
반이민 정서·외국인 혐오 공격도 기승
"우리나라에 불화, 공포, 증오를 퍼뜨리고 러시아를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하는 것이 테러범의 핵심 목표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45명의 목숨을 앗아간 러시아 모스크바 시티홀 공연장 테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테러 의도가 무엇이었든, 러시아 사회의 위기만은 옳게 짚었다. 테러로부터 2주가 흐른 지금 러시아는 증오로 타오르고 있다. 러시아 고위층은 테러 용의자에게 가해진 고문을 눈감다 못해 옹호한다. 외국인 테러범에 분노해 이민자 혐오도 판친다. 원칙을 저버린 분노의 방향은 결국 인권 침해였다.
"그럼 괴물을 대접할까"… 묵인된 고문
AP통신은 4일(현지시간) 러시아 사회 모습을 "지난달 22일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의 여파로 푸틴 대통령의 더욱 가혹한 통치를 위한 무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단적인 예시는 혹독한 고문 정황이다. 지난달 24일 법정에 출두한 테러 핵심 용의자 4명 모두 고문의 징후가 뚜렷했다. 모두 얼굴 등에 피멍이 들었고, 의식이 희미한 채 휠체어를 탄 사람도 있었다. 귀에 붕대를 감은 용의자는 심문 중 귀가 잘린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 성기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영상마저 떠돌았다.
고문은 국제사회의 절대적 금기인데도, 러시아 내부에선 선명한 고문 정황을 묵인하거나 숫제 감싸는 분위기다. 러시아 국영 방송사 RT의 마가리타 시몬얀 편집장은 AP 인터뷰에서 "수많은 동료 시민을 죽인 괴물을 쫓는 것이 당신이라고 상상해 보라"며 "그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따뜻한 죽과 요거트라도 대접할까"라고 고문 비판에 날을 세웠다.
타지키스탄 출신 러시아 가수 마니자 상힌은 고문을 비판했다가 테러 옹호 혐의로 러시아 당국 조사를 받고 있다.
러시아 정치권에서는 1996년 중단된 사형 집행을 부활시키자는 주장마저 나왔다. 러시아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 대표는 "사회 분위기와 기대"를 고려해 사형 부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혐오도 활활… 칩거하는 이민자들
용의자들이 타지키스탄 국적이라는 점 때문에 외국인 혐오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현지 매체와 인권 단체에 따르면 러시아 전역에서 외국인 혐오 공격이 급증했다"며 "인권 운동가들은 용의자에 대한 정부의 대우가 타지키스탄인에 대한 차별적 공격을 부추긴다고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이민자 권리 운동가 드미트리 자이르벡은 모스크바 테러 이후 2주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만 약 400명이 추방됐다며 "이런 규모의 반이민 움직임을 본 적이 없다"고 NYT에 말했다. NYT는 러시아에서 일하는 타지키스탄인들과 인터뷰한 결과 일부는 구금이 두려워 수일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고문을 정당화하고 외국인 혐오마저 판치는 러시아 기류는 인권 퇴보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인권단체 넷프리덤은 "(고문 정당화는) 초법적 징벌을 승인하고, 법 집행 기관에 적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고 우려했다. 러시아 보안 전문가 안드레이 솔다토프도 "고문과 그에 대한 묵인은 끔찍한 폭력이 용납되고 장려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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