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대법원, 19세기 주법 시행 허용 결정
사실상 전면 금지… 강간 등 예외도 없어
대선 최대 쟁점 놓고 트럼프 '곤란하네'
미국 애리조나주(州)가 160년 전 만들어진 임신중지(낙태) 금지법을 되살려내면서 오는 11월 미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여성 임신중지권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대선 결과를 좌우할 '스윙 스테이트(경합주)' 애리조나는 물론, 전국 선거 판세를 요동치게 만들 이 쟁점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셈법이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로 1864년 제정 법 부활
애리조나주 대법원은 9일(현지시간) 찬성 4, 반대 2 의견으로 1864년 제정된 임신중지 금지법이 오늘날에도 시행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현재 연방법이나 다른 주법에 이 법 시행을 막는 조항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법 시행은 14일간 유보하고, 합헌성에 대한 추가 의견 수렴을 위해 사건을 하급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남북전쟁 시기 생겨난 이 법은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를 제외하고 임신 전 시기에 걸쳐 낙태를 사실상 전면 금지한다.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도 예외로 인정하지 않는다. 임신중지 시술을 하는 의사 등은 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그동안 이 법은 사문화된 상태로 전해져 내려왔다. 임신중지권을 헌법상 권리로 보장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임신 초기에 한해 중단을 허용하는 다른 주법들이 제정되면서다. 실제 이전까지 애리조나에서는 임신 첫 15주 동안 임신중지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22년 6월 연방 대법원이 임신중지 허용 여부를 각 주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면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것이 부활의 계기가 됐다. 공화당 소속이었던 당시 애리조나주 법무장관이 주 법원을 설득해 주법 집행에 대한 차단 조처를 해제하도록 한 것이다. 법정 다툼을 끝낼 이날 주 대법원 결정이 공식 효력을 발휘하면 미국 내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하는 주는 텍사스주 등 총 15개 주로 늘어난다.
쟁점 될수록 웃는 바이든… 트럼프는 '조용'
통상 임신중지권 논쟁은 민주당에 호재, 공화당엔 악재로 분류된다. 2022년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여파가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로 이어진 바 있다. 여성·진보층 유권자들이 강하게 결집하면서 공화당 표가 떨어져 나간 탓이다.
민주당은 이날 판결이 나오자마자 비판에 나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이 잔인한 금지법은 여성이 투표권을 갖기도 훨씬 전에 제정됐다"며 "이번 판결은 여성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공화당 선출직 공직자들의 극단적인 의제가 반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애리조나주 법무장관인 민주당 소속 크리스 메이즈는 "우리 주의 오점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자신의 임기 동안 어떤 의사나 임산부도 기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반대로 이슈가 뜨거워질수록 불리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낙태 문제는 각 주가 투표나 입법에 의해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낸 바 있다. 민주당 지지세력 결집으로 이어질 임신중지권 문제는 최대한 모호한 입장으로 묶어두고, 불법 이민이나 경제 등 자신에게 유리한 이슈로 초점을 돌리려는 계산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미 워싱턴포스트는 "낙태에 대한 트럼프의 정치적 계산이 무너지는 데에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민주당의 승리를 불러일으킨 (임신중지권) 문제를 무력화하거나 최소한 흐릿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화요일 애리조나주 대법원 판결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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