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스 드 발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편집자주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으려면 기후, 환경, 동물에 대해 알아야겠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가 4주마다 연재하는 ‘인류세의 독서법’이 길잡이가 돼 드립니다.
이 시대 최고의 영장류학자이자 탁월한 이야기꾼인 프란스 드 발이 최근 세상을 떠났다. 모두가 에버랜드에 사는 대왕판다 ‘푸바오’에 대해 열광하던 때였다. 푸바오 영상을 넋 놓고 보다가 그의 별세 소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드 발의 책 중 동물의 문화를 다룬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를 최고로 꼽는다. 2001년에 나온 책이지만, 이만큼 예리하면서 위트 있게 인간과 동물을 성찰한 책은 당분간 보기 힘들 것이다.
인간은 자기만을 문화를 가진 유일한 종으로 여기고, 문화 덕분에 야만의 자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사회를 구성하는 동물이라면 자신이 속한 종과 집단에 따라 행동과 지식이 축적된 생활 양식이 있다. 유명한 사례는 일본 고시마섬의 일본원숭이다. 이 섬의 원숭이들은 바닷물에 고구마를 씻어 먹는 문화가 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브라질 라구나에는 인간과 함께 물고기를 잡는 큰돌고래 집단이 있다. 인간이 먹이로 길들이지도 않았는데 공동 어업을 하는 돌고래들은 새끼에게 인간과의 협동 기술을 가르친다. 문화의 수직적 전승이 잘 드러나는 사례다.
인간은 문화라는 렌즈를 벗고서는 세상을 볼 수 없다. 인간의 ‘감각 기관으로 접한 환경’(움벨트)과 이를 토대로 축적한 생활 양식에서 유체이탈해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볼 수 있겠는가. 소리로 세상을 보는 박쥐의 세계와 문화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동물 그 자체를 오롯이 만나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드 발은 동물을 볼 때 의인화는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정 동물을 사랑한다면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해당 종과 개체의 생태·행동학적 지식을 끊임없이 공부해 인간의 렌즈를 동물의 것으로 바꾸려는 시도 같은 것 말이다. 정상에 도달하지 못하는 시시포스의 노동이지만, 드 발은 이를 ‘동물 중심의 의인화’라는 필요 덕목으로 불렀다. 철학적으로 바꿔 말하면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동물-되기’가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푸바오에 대해 그러한 반성적 노력을 했을까. 푸바오와 사육사와 우정 그리고 푸바오의 천진난만한 얼굴에 푹 빠져 있었지만, 정작 푸바오가 빠져 있었던 ‘동물원’이라는 깊은 함정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푸바오가 사람을 좋아하고 행복할 거라고 착각한다. 판다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단독 생활을 하는 종이다. 서너 살에 독립한 뒤 죽을 때까지 숲의 단독자로 살아간다. 사회생활은 암컷과 수컷이 교미를 하기 위해 만날 때 잠깐 이뤄진다.
2003년 중국 과학자들이 ‘동물생물학’에 쓴 논문을 보면, 울타리 안에서 제자리를 맴돌고, 고개를 강박적으로 끄덕이는 정형행동이 동물원에 사는 판다 행동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형행동은 동물원 동물에서 관찰되는 반복적이고 목적이 없는 이상행동이다.
드 발은 인간에게 사육되는 야생동물이 ‘문화적 불이익’을 당한다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동물원의 판다도 자기 종과 집단 특유의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대신 돌아온 건 인간 문화에 종속된, 자신의 유전자적 본능과 동떨어진 괴이한 생활양식이었다. 동물원에는 문화적으로 반인반수인 괴수들이 살고 있다.
드 발은 묻는다. 인간은 얼마나 동물적이며, 동물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우리는 유사성에 기반해 동물과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동물과 차이를 인식해 야생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 왜 판다가 동물원에 있는지 묻고, 푸바오-되기를 하며 시시포스의 산에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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