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보호작업장 '해피드림' 김민진 원장]
할아버지·아버지 이어 '창혜복지재단' 운영
'장애인 만든 빵 먹기 싫다' 편견에 상처도
재단 사회복지사 직원 위로와 격려에 버텨
“오늘 기분은 어때요?”
전북 익산시 덕기동에 있는 장애인 보호작업장 ‘해피드림’ 김민진(38) 원장은 하루를 이 한마디로 시작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들의 컨디션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해피드림 근로자는 20명, 훈련생은 21명인데 모두 발달장애인이다. 제과·제빵 제조, 판촉물 인쇄, 사무용 의자·운동용 매트 등을 생산·납품한다. 발달장애인들은 업무 숙련도 외에도 개개인의 건강이나 심리 상태에 따라 근무 시간이 최소 4시간에서 최대 8시간으로 달라질 수 있다. 이에 김 원장은 매일 아침 40명 넘는 이들의 표정 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난 뒤 자신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해피드림은 장애인이 살기 좋은 지역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설립된 ‘창혜복지재단’ 산하기관이다. 김 원장은 재단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재단을 만든 건 김 원장의 할아버지인 고 김현수씨다. 전남 영암 출신인 김씨는 생전에도 장애인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1957년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중 익산에 잠시 정차했을 때 굶주린 아이들이 창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 특수교육시설인 전북혜화학교를 세웠다. 이후 김씨 아들이자 김 원장 아버지인 김윤배씨가 재단을 이어받아 지금의 해피드림과 장애인 거주시설인 창혜원·청록원·햇살정원을 차례로 마련했다.
김 원장은 어려서부터 발달장애인과 가족처럼 지낸 덕에 그들에 대한 편견이 없다. 그는 “어린 시절의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다”고 돌이켰다. 2015년 재단을 물려받기로 결심한 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도 단번에 땄다. 그러나 이후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으며 판로 확보에 나서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김 원장이 ”호두과자 한번 맛보세요”라고 하면 대놓고 “장애인이 만들어 먹기 싫다”거나 ‘장애인들이 만든 제품인데 질이 좋겠느냐’며 눈길조차 안 주는 사람이 허다했다. ‘젊은 여성 대표’라는 명함도 때론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는 “나이 어린 대표라고 아니꼽게 보는 시선들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씁쓸해했다.
그럴 때마다 김 원장을 일으킨 건 재단에서 함께 일하는 사회복지사 직원들이었다. 너무 힘들어 사직서를 20번 넘게 썼는데 복지사들이 그때마다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맞다”며 위로하고, 격려해 버틸 수 있었다.
김 원장이 해피드림을 운영한 지도 벌써 10년째다. 그는 “체계적인 교육·직무 훈련 시스템이 갖춰지면 발달장애인도 얼마든지 자립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업무 숙련도가 높은 장애인들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비장애인보다 더 꼼꼼하게 일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장애인 근로자들이 손에 쥐는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게 현실이다. 이마저도 업무 수행 능력이 뛰어난 일부에 해당할 뿐 최저임금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는 이들도 적잖다. 장애인 보호작업장 특성상 수익 창출이 원활하지 않은 한계를 극복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원장은 정부나 지자체 지원이 필요하다고 늘 말한다. 그는 “장애인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건 자아실현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장애인들이 기본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근로수당과 같은 지원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발달장애인이 거창한 능력을 보여줄 때보다 일상 속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낼 때 더 보람을 느낀다”며 “근로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에 계속 매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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