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총선 참패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채 상병 특검' 딜레마에 빠졌다. 특검법 통과를 거부하며 야권의 거센 압박에 맞서자니 표심으로 드러난 정권 심판 여론이 부담이다. 이미 당내에서는 특검법 찬성 의견이 분출하며 '반란표' 압박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특검법 저지에 나설 경우 더 큰 갈등과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이어 이달 3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더불어민주당은 5월 2일 처리를 공언하며 21대 국회에서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그간 "야당의 정치적 공세"라고 일축해왔다. 당내에서는 여전히 "수사 중인 사안인 만큼 특검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은 유지돼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따라서 야당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검에 찬성할 경우 강성 보수층의 반발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총선 이후 상황이 돌변하면서 여당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정부와 여당을 향한 차가운 민심이 확인된 만큼 기존 대응을 고수하기는 어려운 처지다. 자칫 '총선 참패에도 변한 게 없다'는 인식만 강화돼 여당이 더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수직적 당정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말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법)의 경우 국회 본회의에 앞서 부결을 당론으로 정한 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며 야당의 공세에 맞섰다. 사실상 결정권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맡기는 모양새였다. 반면 이번에는 그 같은 수순을 밟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워졌다.
당 지도부는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한 채 말을 아끼고 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12일 "양당 원내대표끼리 만나 상의할 일"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15일 4선 이상 중진 당선자 모임과 16일 당선자 총회가 예정된 만큼 충분한 의견 청취 절차를 거칠 전망이다. 국민의힘 원내관계자는 14일 "(윤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당분간 공식적인 입장이나 의견 표명은 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냥 시간을 끌기도 곤란한 처지다. "(5월) 본회의 표결 때 찬성표를 던지겠다"(안철수 의원)며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표'가 늘어난다면 여당으로서는 자중지란을 자초하는 격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통화에서 "(특검법 수용 반대는) 대통령 하나 살리겠다고, 당을 죽이는 길"이라며 "대통령실에서 당이 부결할 명분을 하루빨리 마련해줘야 한다"고 성토했다. 한 초선의원은 "정부 심판론에 더해 이종섭 전 호주대사 논란 등이 총선 패배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낙선자들의 '반란표'를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느냐"고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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