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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원래 잘하는 것에 집착한다

입력
2024.04.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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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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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분야의 일을 수십 년 하다가 조직 리더가 된 사람이 있다. 번뜩이는 재치, 사람 마음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고 언변이 좋아 조직 내부나 소비자 층에서도 두루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 국내외 경기가 가라앉고 업계가 어려운 상태에 처하면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시절이 좋을 때는 별 일 없이 하던 대로 두어도 되었던 재무·기획·영업·인사 분야에서 새삼 들여다보고 변화시켜야 할 일이 많아진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리더가 워낙 홍보나 선전 등에 익숙한 분이다 보니, 경험이 별로 없는 재무나 노조 문제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회사 차원의 의사 결정에서 원래 본인에게 익숙한 홍보맨 스타일 접근을 하려 하고, 심지어 직접 나서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적절치 않은 대응으로 인해 사내 분란도 많아지고, 소비자들도 더 이상 회사를 신뢰하지 않으면서 주가마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구나 내가 잘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이가 거실에 앉아 나무 조각을 쌓았다 무너뜨리는 일을 무한 반복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소위 독립적인 성취를 위해 한 가지 일을 반복하면서 결국 숙달(mastery)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은 성인으로 성장과 발달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때 하는 일은 내가 재미있어야 반복할 수 있고, 여러 번 반복하면 더 잘 되니까 더욱 재미를 느끼게 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적절한 계획표와 시간 안배가 있어야 하고, 이를 관리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 좋은 이유가 여기 있다. 공부를 하면서도 영어가 재미있으면 영어책만 들여다보고, 역사가 재미있으면 역사 책만 들고 시간을 보내거나 그것도 아니면 오락이나 만화책을 대상으로 반복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경향은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일 수 있겠다.

다양함을 아우르는 조직의 리더가 된 이후에도 과거 전문가 시절의 업무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나 그렇다. 왜냐하면 이 일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고, 그때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나머지 뒷면의 일들은 다 정리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 사람이 익숙하던 특정 분야의 문제 해결방식이 모든 분야에 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통나무를 자르는 큰 도끼를 다루는 방식으로 자개장을 만들려 하는 사람을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다. 이 때 적합한 리더는 직접 도끼로 다 하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합한 도구와 이를 사용할 줄 아는 기술자들이 서로 협력해 일 할 수 있도록 조직하고 독려하는 사람일 것이다. 젊은 시절 본인이 하는 일만 하면 자동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던 나머지 일들은 사실 누군가 다른 전문가들이 담당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 조직의 리더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내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생각과 나서려는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 큰 틀에서 나아갈 방향을 보면서 같이 일하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지지하는 것이 그가 할 일이다.

조직 입장에서는 한 사람이 수많은 자원과 인력을 포함한 모든 권한을 독점하거나 결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사회나 사외이사, 감독 부서 등에 적절히 자원과 힘을 배분함과 동시에 결정권을 분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견제하면서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구 500만 명 수준의 작은 나라인 노르웨이는 엄청난 양의 석유가 발견된 이후 큰 부자 나라가 되었다.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자는 정치인도 있었고, 외국 대기업의 유혹도 받으면서 베네수엘라처럼 포퓰리즘에 가득한 나라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자원도 남겨 놓으면서 국부 펀드의 적절한 운용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후손을 위해 채굴량을 제한하는 절제 미학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들은 적절한 권력 배분과 더불어 학자,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문화 때문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됐건 오늘 조직 리더의 결정은 미래의 자손들에게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기술자는 배운 대로 주어진 일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공부하고 지식의 발전이 없으면 아무리 오랜 시간 일을 한다 해도 그저 숙련공에 머물 것이다. 이들은 시대의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다양한 지식인들이 전문가라 대접받고 살지만, 상당수는 그저 책과 외국에서 배운 것을 적용하고 수정하는 일을 반복하는 경우로 그친다. 이들은 전문가보다 그저 지식 기술자일 수도 있다.

이들 전문가 중에서 자신의 지식과 성찰을 기반으로 사회와 문화의 흐름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물건과 제도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다. 장인 혹은 예술가 수준의 전문가에 이르는 것은 이들일 것이다. 내가 잘 하던 일과 방식에 얽매이면 바뀌는 세상에 적응할 수 없다. 리더의 가장 큰 덕목은 유연함과 권한 위임, 그리고 다 해내려는 욕망을 참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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