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가 또 죽었다: 고위험 임신의 경고]
"숨 쉬는 게 힘들어요" 33세 산모
둘째 출산 중 대동맥 찢어져 사망
남편 "의료진이 최선 다한 것 알아"
아이에게 엄마 그림 보여주며 추억
집도 교수 "아이가 자책하면 찾아오길"
결과 좋지 않았던 산모들에 마음의 빚
편집자주
11년 간 아기를 낳다가 사망한 산모는 389명. 만혼·노산·시험관·식습관 변화로 고위험 임신 비중은 늘고 있지만, 분만 인프라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100일 동안 모성사망 유족 13명, 산과 의료진 55명의 이야기를 통해 산모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붕괴가 시작된 의료 현장을 살펴보고 안전한 출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고민했습니다.
"저 근데… 숨 쉬는 게… 답답한데… 맞나요?"
2019년 5월 24일 응급 제왕절개 수술 중 산모 이수경(가명)씨가 의료진을 향해 힘겹게 내뱉었다. 수경씨는 수술 중 대동맥의 가장 안쪽 막이 찢어졌다. '대동맥 박리'는 흉부외과 의사가 즉시 가슴을 열고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 가능성이 높은 치명적 증상이다. 수경씨는 답답함을 호소한 뒤 순식간에 의식을 잃었다. 이후 혈압, 맥박, 호흡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수술을 집도한 박지윤(42) 분당서울대병원 고위험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 교수는 기도 확보를 위해 마취과 의료진에게 기관 삽관을 요청했다. 연이어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한 시간여 뒤에는 인공심폐보조장치(ECMO)를 수경씨 몸에 달았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급작스러운 아내의 죽음…1.8㎏ 태어난 둘째는 건강
남편 김연우(가명·40)씨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비극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장인어른이 "이제 그만 수경이를 놓아주자"고 하자, 연우씨는 눈물을 쏟아내며 연명치료를 중단했다. 다음 날 새벽 1시쯤 수경씨는 33세에 생을 마감했다. 다행히 둘째 딸은 임신 31주에 1.8㎏으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저체중에 조산이라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10여 일 치료를 받았지만, 큰 문제없이 퇴원했다.
수경씨의 사망과 관련해 유족과 의사의 기억은 조금 달랐다. 다만 아내를 잃은 연우씨와 환자를 잃은 박 교수의 슬픔은 다르지 않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 다른 무게의 슬픔을 견딜 뿐이었다.
아내의 극심했던 호흡곤란
수경씨는 기저질환이 있었다. 폐동맥 고혈압이다. 둘째를 임신하고 29주째인 2019년 5월 13일 숨 쉬기가 너무 힘들어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그때 자신의 질환을 알게 됐다. 산전 진찰을 받던 집 근처 산부인과에서도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실제로 수경씨는 병원 진료를 앞두고 극심한 호흡곤란 증상을 여러 번 경험했다. 여느 만삭 산모들이 호소하는 증상과는 차원이 달랐다. 숨이 가빠서 안방에서 거실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연우씨가 박 교수를 처음 본 건 아내의 수술 전날이었다. 연우씨는 저녁 9시쯤 수경씨를 데리고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아내의 호흡곤란 증상이 너무 악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고위험 산모 중환자실이 산모들로 꽉 차 있었지만, 박 교수는 수경씨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지 않았다. 전원 과정에서 치료 시기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증세가 호전된 산모의 양해를 구해 병실을 확보했고, 수경씨를 바로 입원시켰다. 박 교수는 수술 날짜를 이틀 뒤로 잡았지만, 수경씨의 상태가 악화하자 입원 하루 만에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환자 치료에 최선 다한 박 교수...믿고 의지한 연우씨
박 교수는 수경씨를 살리려 최선을 다했다. 연우씨는 박 교수를 옆에서 빠짐없이 지켜봤기에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박 교수는 수술 전부터 폐동맥 고혈압의 위험성을 연우씨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수술을 마친 뒤에는 수술 중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도 직접 말해줬다.
박 교수는 수경씨가 사망한 뒤에도 시간 될 때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들러 아이를 보고 갔다. 그러다 연우씨를 자주 마주쳤다. 박 교수가 의료사고 가능성에 대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산모가 출산 중 사망하면 당연히 의심할 수 있지만, 의료과실은 맹세코 없었다고 전했다. 연우씨도 그 자리에서 교수님을 믿는다고 했다.
박 교수는 조심스럽게 부검을 제안하기도 했다. 학자로서, 교수로서, 의료진으로서 양해를 구한다며 어렵게 입을 뗐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산모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수경씨의 응급 상황이 어떤 이유로 발생했는지 부검을 통해 명확히 알고 싶다고 했다. 연우씨가 보기에, 박 교수는 아내의 사망에 대해 무척이나 답답하고 괴로워했다. 연우씨는 그러나 그것만은 허락할 수 없었다. 유족이 정중히 거절하자, 박 교수는 하지 말아야 할 부탁을 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해했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슬픔 극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
“혹시 둘째가 나중에 자기 때문에 엄마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오해하면 꼭 연락주세요. 제가 정확하게 설명해 줄게요. 그건 네 탓이 아니라 엄마가 어쩔 수 없는 병에 걸려 그런 거라고요.”
둘째가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퇴원하던 날, 박 교수는 연우씨에게 자신의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건넸다. 둘째가 마음이 여려 엄마의 죽음을 자기 탓으로 돌리려 하면, 아이와 함께 찾아오라고 했다. 연우씨는 박 교수의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아이들 사진을 박 교수에게 보내며 근황도 알렸다. 다만 2년 전부터는 보내지 않고 있다. 박 교수가 더는 아내의 죽음을 떠올리며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연우씨는 아내에 대한 슬픈 기억은 잊고 그리움만 남겨두기로 했다. 박 교수도 그러길 바랐다.
연우씨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사실대로 얘기하고 함께 기억한다. 집 벽에는 수경씨가 생전에 그렸던 그림들을 전시해놨다. 수경씨는 미술대학을 졸업해 특성화고교에서 미술 선생님으로 일했다. 아이들이 "이 그림 엄마가 그린 거야?"라고 물으면, 연우씨는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함께 설명해 준다.
수지타산 안 맞는 일, 그럼에도 하는 까닭
박 교수에게는 빚이 있다. 고위험 임신 진료 과정에서 결과가 좋지 않았던 산모들에 대한 빚이다. 박 교수는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고위험 산모를 도와야 된다는 마음에 수지타산 안 맞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수경씨가 사망한 지 6개월이 지난 2019년 11월 연우씨에게 전화가 왔다. 의료사고에 대한 가족들의 의구심을 완전히 없애고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했다고 했다. 공적인 감정을 통해 아내의 사망이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을 확인하면 가족들도 의료과실에 대한 의구심에서 벗어나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 다만 연우씨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혹시 교수님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간다면 신청하지 않을게요."
박 교수는 전화를 끊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연우씨가 자신을 배려해주는 말들이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다. 연우씨의 그 짧은 말은 2009년 산부인과 전공의를 택한 뒤 받았던 어떤 상보다도 가치 있었다. 박 교수는 2016년 강북삼성병원에서 산부인과 교수 생활을 시작해, 다음 해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 박 교수의 손을 거쳐 탄생한 아이들은 어림잡아 5,000명 정도다.
2020년 1월 15일 수경씨의 사망은 의학적으로 대처 불가능한 사고라고 판명 났다. 연우씨는 조정 신청을 취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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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위기 : 놓쳐버린 생명
<2> 긴급 : 예고 없는 그림자
<3> 붕괴 : 포기하는 이유
<4> 암울: 분만병원의 미래
<5> 산후 : 살아남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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