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지도부 "회담 자체가 퇴색될까 봐"
김기현 · 한동훈 때와 달라진 입장
175석 민주당도 굳이 여당과 힘 뺄 필요 없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9일 영수회담에 국민의힘 지도부는 안 보였다. 집권 여당이지만, 향후 국정 방향을 좌우할 중요한 자리를 '패싱' 당하며 체면을 구긴 셈이다. 4·10 총선 참패로 의석수가 적어 입법 영향력이 제한된 데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줄곧 대통령실에 종속적 모습을 보이면서 스스로 입지를 좁혀온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영수회담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외에 대통령실에서 3명, 민주당에서 3명이 배석했다. 하지만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 등 여당 지도부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다. 앞서 의제 설정을 위한 실무 회동 역시 대통령실과 민주당 사이에서 소통이 이뤄졌을 뿐 국민의힘은 측면 지원 역할에 그쳤다.
이에 대해 여당 지도부는 야당에 대한 배려였다는 입장이다. 배준영 국민의힘 사무총장 직무대행은 이날 YTN라디오에서 "대통령과 민주당의 회담이기 때문에 대통령실이 앞장서고 저희는 보이지 않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윤재옥 당대표 권한대행도 지난 26일 “민주당이 주장하는 의제들을 가지고 만난다면 저도 여당 대표로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모처럼 회담 분위기가 만들어졌는데 ‘여당 대표도 참여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 회담 자체가 퇴색될까 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당 출신 용산 참모들... 與, 입지 더 좁아질 가능성
이번 영수회담을 지켜보는 여당 지도부의 태도는 지난 2년간 당 지도부 입장과 배치된다. 지난해 10월 김기현 당시 대표는 윤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요구하는 이 대표를 향해 여야 대표회담을 먼저 수용할 것을 역제안했다. 그는 "정말 중요한 민생 문제를 국회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어디 엉뚱한 번지에 가서 얘기하느냐"는 논리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달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이재명 대표에게 1대 1 TV토론을 거듭 요청하면서, 이 대표의 맞상대는 윤 대통령이 아닌 여당 대표라는 점을 강조했다.
영수회담에서 여당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는 근본적 이유는 그간 자초한 수직적 당정관계에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2년간 당대표부터 당 운영 전반을 대통령실 의중에만 맞춰왔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지난해 말 한동훈 비상대책위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야 총선을 의식해 "민심부터 챙겨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그때도 윤심(尹心)을 앞세운 당 내부 여론과 충돌을 일으켰다. 실제 김영우 국민의힘 서울 동대문갑 당협위원장은 전날 페이스북에서 "앞으로 국회에서 주요 법안과 정책협상에 있어서 여당의 입지는 더욱 쪼그라들고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입장만 살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할 게 뻔하다"고 우려했다.
당 출신인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이 투입된 것도 앞으로 당의 입지를 좁힐 가능성을 키운다. 현실적으로 4·10 총선 참패로 108석을 확보하는 데 그친 국민의힘은 22대 국회에서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175석의 압도적 의석수를 확보한 민주당 입장에서도 대통령실과 직거래를 시작한 만큼 굳이 국민의힘과 밀당에 힘을 뺄 필요성이 없어진 셈이다.
다만 정희용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회담 이후 논평을 통해 "오늘을 시작으로 대통령과 야당은 물론 여당도 함께하며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만남을 계속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도 앞으로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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