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식 헬퍼 한국에 적합할까]
'외국인 가사도우미' 이르면 8월에 시범 사업
최저임금 미적용 '월 100만 원' 주장 계속되나
①법 위반 ②내국인 타격 ③외국인 이탈 문제
'값싼 인력' 취급하기보다 "매칭 통한 효율화"
"홍콩에서 헬퍼(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일하는 여성에게 주는 도움은 절대적입니다. 헬퍼 없이는 커리어 유지가 안 됐을 거예요."
15년 홍콩 생활을 해 온 금융계 종사자 임주영(49)씨는 단언했다. 임씨를 비롯해 홍콩·싱가포르 워킹맘 12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 '선 넘은 여자들'에서 치열하게 일과 육아 사이 외줄타기를 해온 저자들은 주 6일 집에 상주하며 돌봄과 가사를 도맡는 헬퍼의 존재가 절실했다고 증언한다.
국내에서도 2년 전부터 정치권을 중심으로 '헬퍼 제도' 도입 논의가 활발해졌다. 국내 입주 가사도우미 요금은 월 300만~450만 원대로 고소득층 전유물인 상황이니 외국 인력을 들여와 요금(임금)을 100만 원대로 정하면 중산층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게 오세훈 서울시장 등의 논리다. 여기엔 '시간 빈곤'에 허덕이는 맞벌이 부부의 현실이 저출생의 핵심 원인이란 진단이 깔렸다.
하지만 논란도 상당하다. 최저임금 미적용이 가능한지, 내국인 피해는 없을지, 외국인 인권 침해 가능성은 크지 않은지 각종 우려에 더해 "부모가 직접 돌볼 시간부터 달라"는 의견도 잇따랐다. 이를 두고 임씨는 "근로시간 단축 정책도 필요하겠지만 훌륭한 여성 인재 중에는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며 헬퍼 제도가 '돌봄 선택지'를 넓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반면 미국, 홍콩에서 살다 현재 한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박혜인(가명·40)씨는 제도 도입에 회의적이다. 홍콩과 한국 모두 '과로 국가'인 점은 비슷해도 돌봄 환경이 다르다는 것. 박씨는 "한국에 왔더니 무상보육에 서비스도 섬세한 어린이집 제도가 있었다"며 "홍콩은 만 3, 4세까지 기관에 보내기 어렵고, 종일반도 거의 없고 비싸다 보니 헬퍼를 대신 쓴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고용을 돌봄 분야로 확대하자는 제안은 맞벌이 가구 증가, 가구소득 대비 육아도우미 비용 부담이라는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급속한 고령화와 맞물린 간병인 구인난도 심화하고 있는 터라 외국인 돌봄인력 영입 논의는 갈수록 뜨거워질 전망이다. 당장 이달 중 시작되는 최저임금위원회 심의에도 '돌봄 분야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 문제가 핵심 의제로 부상할 참이다. 이런 가운데 '돌봄인력 수입' 찬성론이 우선적 대안으로 제시한, 홍콩·싱가포르식 '월 100만 원'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는 과연 우리나라에 적합할까. 통계·보고서·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따져봤다.
① 최저임금 이하로? 법적으로 쉽지 않다
제도 도입을 둘러싼 최대 논쟁거리는 줄곧 '이용 요금', 즉 임금 수준이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국내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주 40시간 노동 기준 월 206만 원이다. 이에 대해 정책 찬성파는 "너무 비싸다"며 효과가 있으려면 100만 원대로 낮춰 가급적 많은 사람이 저렴하게 이용해야 한다고 본다. 반면 노동·시민사회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착취, 내국인의 동반 임금 하락이 불 보듯 뻔하다며 강력 반발해왔다. (관련 기사 ☞ 본보 4월 25일자 "저출산 해결 위해 외국인 데려와 최저임금 배제? 서민 호주머니 털겠다는 발상")
2023년 기준 홍콩 헬퍼가 받는 최저임금은 월 4,870홍콩달러(약 85만 원)이고, 여기에 식대(약 22만 원) 보험료 의료비 중개업체 수수료 등을 이용자가 부담하는 구조다. 그래도 월 100만 원 안팎이다. 헬퍼들이 매일 12시간씩, 주 6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점을 고려하면 인건비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3월 한국은행이 '돌봄 부문에 외국 인력을 도입하고 현행 최저임금보다 돈을 덜 줄 방법을 찾자'는 보고서를 내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외국인만 최저임금을 미적용하는 것은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금지협약(제111조)에 더해 근로기준법, 외국인고용법 등에 저촉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에 한은이 '법적 제약'을 우회해 보고자 내놓은 첫 번째 방안이 개별 이용자 가정에서, 중개기관 없이 외국인과 사적 계약을 맺고 직고용하는 모델이다. 이 경우 이용자가 근로기준법 제11조 가사(家事) 사용인에 해당돼, 최저임금 지급 의무가 없다는 빈틈을 이용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열악한 가사근로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이 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다만 이런 방식은 이용자와 노동자의 갈등 상황에서 국가 개입이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제 발생 시 이용자와 노동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한은 보고서도 이 방안을 따를 경우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야반도주하는 등 불법체류 방지 관리·감독 의무가 개별 가정에 있다고 설명한다. 이용자 불편 가능성에 더해 상시적인 감시 등 인권 침해 우려가 큰 대목이다.
② 내국인 종사자도 힘들다 "시스템 붕괴"
한은의 두 번째 방안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돌봄 분야에 현행 최저임금보다 낮은 별도 임금 체계를 책정하자는 거였다.
이는 노동계로부터 1안보다 더 거센 반발을 불렀다. 안 그래도 외국 인력 도입 시 내국인 피해가 예상되는데, 최저임금 빗장마저 풀면 '임금 바닥 경쟁'이 뻔하다는 것. 지난달 30일 발간된 민주노동연구원 워킹페이퍼에서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돌봄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는 맹목적 주장"이라며 비판했다.
'반값 노동'으로도 불리는 돌봄 분야는 임금 수준이 높지 않고 업무 특성상 노동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보니 '열악한 일자리'로 평가받는다. 올해 2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아이돌보미, 보육 대체교사 등 돌봄 노동자 1,001명을 조사한 결과 세전 월급은 평균 171만 9,000원이었다.
최저임금 적용을 못 받는 게 아닌데 왜 그렇게 낮을까. 17년 차 아이돌보미 오주연(54)씨는 "이용 수요가 등하원 시간대에 집중된 탓"이라고 설명했다. 돌봄 분야는 하루 8시간 풀타임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아동 돌봄은 부모, 조부모가 도맡기보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학원, 태권도장, 방과 후 학교 등 각종 기관으로 나눠진다. 그 빈틈을 메우는 게 '공공 베이비시터'인 여성가족부 아이돌보미나 민간 등하원 도우미인데, 파트타임 이용 수요가 대부분이라 노동자 입장에서는 충분한 수입을 올리기 어렵다.
이주남 공공연대노조 부위원장은 "아이돌보미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250원 높은 1만110원이고 보통 월평균 근로가 100시간을 넘기기 힘들다"며 "벌이가 안 되니 있던 인력도 나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기에 노동계는 '내국인 종사자 처우 개선부터 해보고 그래도 인력 충원이 안 되면 외국 인력을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제도 도입의 수혜층과 피해층 상황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혜택은 주로 중산층 이상이 보고, 타격은 저임금·중고령 취약 여성이 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돌봄서비스업 외국인 노동시장 연구'(2022)에서 "현 돌봄노동 시장에 여성 중고령 종사자와 상대적으로 저학력 취업자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고령화 시대에 이들의 일자리 창출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지금껏 제도 찬성파가 구체적인 '내국인 보호 방안'을 제시한 바는 없다.
③ 외국인은 100만 원 OK할까 "이탈 우려"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 여전히 '월 100만 원' 모델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국가 간 임금 차이라는 현실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 입장에서 '고되더라도 몇 년 참고 버티면 가족도 부양하고 모국에서 편히 살 돈을 벌지 않냐'는 것. 대표 가사도우미 송출국인 필리핀의 2022년 풀타임 노동자 평균 월급은 1만8,423페소(약 44만 원)다. 월급 100만 원이면 2배, 200만 원이면 4.5배인 셈.
다만 3차 산업 위주의 도시국가인 홍콩·싱가포르와 달리 한국은 농어촌, 제조업 등 가사도우미로 입국한 외국 인력이 이탈해 일할 만한 '대체 일자리'가 넘치는 점이 제도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를 찍는다. 가사도우미만 최저임금을 미적용한다면,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는 공장 등 다른 분야로 이동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내 미등록(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수요는 암암리에 많은 상황이라 (최저임금 미적용 시) 공장, 농장 등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돌봄 노동 특성상 단순한 인력 이탈을 넘어 이용자 가정과 아동 안전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 미등록 외국인은 42만 명이다. 또 홍콩·싱가포르에서 100만 원 모델이 가능한 것은 가사도우미가 이용자 가정에 함께 살기 때문에 주거비 부담이 없다는 점도 작용한다.
"최저임금 지키되 효율적 활용을" 제언도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은 이르면 8월부터 시작된다.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 100명이 서울시 가정에 아이 돌봄과 가사를 방문형으로 제공하게 되는데,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최저임금 적용 및 최소 주 30시간 근로를 보장하는 모델이다. 그럼에도 최저임금위를 비롯해 '임금 논쟁'의 불씨는 계속 남아있는 상황이다.
현행 최저임금보다 낮게 임금을 주는 것은 한국 특성상 여러 부작용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만큼 외국 인력을 무조건 '값싸게' 활용하기보다 내외국인 인력 풀을 넓히되 '효율적인 서비스' 방법을 찾자는 제언도 나온다.
가사 서비스 스타트업 '청소연구소' 대표인 연현주 연세대 교수는 "물가를 고려하면 월 100만 원 임금 수준은 지속 가능성이 없고 이탈 가능성도 크다"며 "외국 인력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되 돌봄 수요가 집중되는 등하원 시간(오전 7~9시, 오후 4~8시) 중간에 청소 등 가사 서비스를 매칭하는 방법도 대안"이라고 했다. '금액 부담 탓에 꼭 필요한 시간만 시터를 쓰고 싶은 이용자'와 '풀타임으로 일하고 싶은 노동자' 간 미스매치를 '테트리스 같은 업무 배정'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겠냐는 구상이다. 실제 고용부가 시범사업 참여 의향이 있는 잠재 수요층을 대상으로 한 수요 조사에서도 '풀타임' 이용 의사보다는 '시간제' 이용 의사가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홍콩·싱가포르 사례에 비춰 따져본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의 정책 추진 목표, 노인 돌봄 분야에 외국 인력을 도입한 일본 사례를 다룬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 '필리핀 이모님' 오면 출생률 오를까? '선진 사례' 홍콩도 0.77명
☞ "아이보다 노인 돌봄이 문제" 외국 인력 4만명 부른 일본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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