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예비비 사용내역 단독 입수]
효율적 재정 운용 위해 도입했으나
사후 검증 한계, 눈먼 돈 집행 우려
당해 연도 공개 의무화 고려해야
정부가 재량껏 쓸 수 있는 쌈짓돈인 예비비가 5조 원 안팎까지 늘어난 만큼 사용내역 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효율적인 재원 운용을 위해 도입한 예비비가 ‘눈먼 돈’처럼 쓰일 수 있어서다. 대통령실 이전 비용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정부의 예비비 사용내역 비공개 결정이 반복될 경우 국민 불신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제도 개편에 힘을 싣는 부분이다.
1일 기획재정부‧국회에 따르면, 2018, 2019년 각 3조 원가량이던 예비비는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5조6,000억 원, 2021년엔 9조7,000억 원까지 급증했다. 그러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인 2022년 5조5,000억 원으로 줄어든 뒤 지난해 4조6,000억 원을 기록했다.
예비비는 예산을 꾸릴 당시 예측할 수 없는 재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재원이다. 전체 예산의 1% 이내로 편성하는 일반예비비와 전염병·자연재해 등 특정 목적에 사용하는 목적예비비로 나뉜다. 국회의 예산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빈번해진 이상기후 재난‧재해 등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문제다. 국회 승인을 받고 정해진 용처에만 쓸 수 있는 예산과 달리, 예비비는 일단 쓴 뒤 사후 검증을 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이전 비용으로 쓴 예비비 사용내역 공개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 때문이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기재부는 야당의 예비비 공개 요구에 “당해 연도의 예비비 편성·집행 내역 공개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기재부가 근거로 든 건 헌법과 국가재정법이다. 국가재정법 제52조엔 ‘정부는 예비비로 사용한 금액의 총괄명세서를 다음 연도 5월 31일까지 국회에 제출해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예비비 결산을 이듬해 받으라는 것이지, 결산 이전에 사용내역도 공개하지 말라고 규정한 건 아니다. 민감하고 국민적 관심사가 큰 사안에 대해 정부가 자의적인 법령 해석으로 비공개 방침을 세운 건 적절치 않다”고 꼬집었다.
예비비 사용 목적인 시급성이나, 확정 예산으로 충당할 수 없는 불가피성에 어긋나게 쓰인 사례도 부지기수다. 앞서 2022년 국토교통부는 회계연도 시작일인 그해 1월 1일 캠퍼스 혁신파크‧스마트물류센터 조성 지원 명목으로 예비비 90억 원을 썼다. 본예산 편성에 ‘구멍’이 있음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해외에선 예비비 사용 투명성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은 예산 초과 지출이나 예산외 지출이 발생하면 분기마다 연방 하원과 상원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일본은 모든 예비비 지출에 대해 사후 국회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도 긴급한 경우 하원과 상원 의결을 거쳐 예비비를 편성할 수 있게 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주요국 예비비 운용 현황’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예비비는 예산 사용 목적‧금액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예산 편성 방침인 구체성 원칙에서 벗어난 예외 항목”이라며 “다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예비비를 미리 편성하기보다 필요시 추가 배정하는 방식으로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조언했다. 예비비 편성 규모를 줄이거나, 국회 심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도 “당해 연도 예비비 사용내역을 일정 기간마다 공개하거나, 국민적 관심사가 큰 사안에 대한 요구가 있을 시 그해에 사용내역 공개를 의무화하는 식으로 관련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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