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세상, 키즈카페]
키즈카페, 최근 9년 새 37배나 쑥쑥
어린이 대표 '놀이 문화' 자리잡아
대형 쇼핑몰 등에선 '필수 시설'로
지자체선 공공형 놀이 시설 운영도
4인 가족 입장·먹거리 10만원 훌쩍
안전 관리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
# 4월 27일 경기 안성시 스타필드에 입점한 키즈카페 '챔피언 1250X'는 땀을 흠뻑 흘린 어린이로 가득했다. 천장까지 30m는 돼 보이는 넓은 공간은 집라인, 튜브 썰매, 초대형 정글짐 등 놀이 시설 천지였다. 카운터 직원은 연신 아이 이름을 부르는 방송을 했다. 쇼핑을 하고 온 부모가 자녀를 부르는 호출이었다. 일곱 살 딸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곳을 찾는 송모씨는 "키즈카페는 주말 놀거리를 해결해 주는 고마운 공간"이라며 웃었다.
# 같은 달 30일 찾은 세종시 종촌동 육아종합지원센터 내 공공형 실내 놀이터 1호점은 트램펄린, 정글짐과 함께 가상현실(VR) 시설이 눈에 띄었다. 대형 키즈카페보다 작지만 무료다. 하루 두 시간씩 3회, 최대 25명까지 이용 가능한데 토요일 예약은 벌써 꽉 찼다. 다섯 살 아들과 들른 강모씨는 "키즈카페는 두 시간 요금을 통째로 받는 경우가 많아 중간에 나오기 어려운데 여기는 부담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주말이면 어린이가 아빠·엄마를 재촉해 향하는 곳이 있다. 어린이 세상인 키즈카페는 먹거리, 쇼핑거리를 넘어 놀거리 발굴에 골몰하는 대형 쇼핑몰에 없어선 안 될 필수 시설이 됐다. 저출산 시대에 오히려 성장 중인 키즈카페는 어느덧 대표 어린이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대형 키즈카페는 4인 가족이 10만 원 넘게 쓰는 건 예삿일이라 어떤 어린이에겐 가깝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키즈카페는 연령대를 기준으로 베이비(유아), 일반(미취학 아동), 주니어(초등학생) 키즈카페로 나뉜다. 대부분 정글짐, 편백나무 놀이터, 트램펄린 등을 기본으로 갖추고 집라인, 소형 번지점프 등 활동적 기구를 보유하기도 한다.
국내 키즈카페는 1994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문을 연 플레이타임이 시초다. 길거리 트램펄린인 '방방' 말고는 유료 어린이 놀이 시설이 없었던 1990년대에 플레이타임은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키즈카페를 시작했다. 이후 서울, 부산 등 대도시 중심으로 생겼고 2010년대에 빠르게 늘었다.
키즈 카페 2,280개, 9년 만에 37배 쑥
문화체육관광부가 놀이 시설을 뜻하는 유원시설업 운영 현황을 집계하는 '관광 산업 조사'를 보면 키즈카페 대부분이 포함된 기타 유원시설업은 2013년 61개에서 2022년 2,280개로 37배 늘었다. 에버랜드 등 종합 유원시설업, 중형 놀이공원 등 일반 유원시설업 합계가 같은 기간 297개에서 480개로 183개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키즈카페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2013년 대비 2022년 기타 유원시설업의 연간 매출액, 이용객 역시 각각 318억 원→2,443억 원, 815만 명→2,177만 명으로 뛰었다.
흥미로운 건 저출산이 본격화한 시기 키즈카페는 역주행한 점이다. 업계에선 이를 부모, 양가 조부모, 이모, 고모 등 가족 열 명이 한 명의 자녀를 위해 지갑을 여는 '텐포켓 현상'으로 설명한다. 귀한 자녀에게 기꺼이 지갑을 여는 가족이 많아지자 그 수혜를 키즈카페가 누리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키즈카페에선 머리가 희끗희끗한 조부모나 삼촌·이모와 함께 온 어린이도 종종 볼 수 있다. 자녀가 줄어든 반면 소득은 늘면서 과거보다 커진 지출 여력,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가족 문화 정착도 키즈카페 산업을 키웠다.
최근 10년 사이 늘어난 대형 쇼핑몰 역시 키즈카페 산업의 성장에 중요한 이유다. 2016년 경기 하남시 하남점을 시작으로 문을 연 신세계 스타필드가 대표적이다. 스타필드는 주 고객인 가족 손님을 겨냥해 대형 키즈카페를 입점시켰다. 당시만 해도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이 크게 집중하지 않았던 '체류 시간 늘리기'를 위해 키즈카페를 내세웠다.
주요 백화점도 뒤이어 오픈한 대형 점포마다 키즈카페를 들였다. 키즈카페가 있으면 가족 단위 고객이 더 찾고, 점포 내 머무는 시간도 늘어 매출까지 높아지는 게 입증됐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키즈카페는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고 경험을 확장하는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고 말했다.
키즈카페는 이후 기업화 단계로 들어서고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현재 키즈카페는 개인 사업자가 대부분이었던 초창기와 달리 여러 지점을 가진 기업형도 적지 않다. 업계 1위 플레이타임중앙을 비롯해 바운스트램폴린파크, 아틀란티스, 캘리클럽 등이 대표적이다.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키즈카페는 거의 이 업체들이다.
대부분 키즈카페는 다양한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놀이형으로 운영되나 여러 직업 활동을 겪어 보는 '키자니아'처럼 영어, 요리, 미술, 뷰티 등을 접목한 체험형도 인기를 끌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론 무인 키즈카페 역시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부모가 육아에서 벗어나는 공간으로 여겨졌던 키즈카페는 아이의 놀이와 체험에 초점을 맞춘 모델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4인 가족 10만 원 예삿일, 안전 문제도 과제
하지만 키즈카페의 가격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 중소형 키즈카페 가격은 주말 기준 시간당 8,000~9,000원이다. 대형 키즈카페는 두 시간에 2, 3만 원으로 더 높고 종일권은 5만 원 안팎이다. 4,000~6,000원 정도인 보호자 입장권에 먹거리까지 더하면 4인 가족 기준 10만 원 넘게 쓰기도 한다. 치솟는 요금은 고급 키즈카페를 지향하고 있는 기업형 업체들이 이끌고 있다.
최근 여섯 살 아들의 어린이집 친구 가족과 키즈카페를 다녀온 정모씨는 "키즈카페는 여름 더위, 겨울 추위, 봄 미세먼지 등 날씨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면서도 "아들과 둘이 네 시간 입장권 3만4,000원에 음료, 간식까지 5만 원 넘게 썼는데 한 달에 두 번 이상이면 결코 가볍지 않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이에 각 지방자치단체는 공공형 놀이 시설을 만들어 주민에게 제공하는 추세다. 가격이 무료거나 저렴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 키즈카페'로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다만 민간 키즈카페와 비교해 시설 수준이 다소 뒤처지는 곳도 있다.
안전 사고도 풀어야 할 과제다. 주로 소형 키즈카페에서 발생하는 안전 사고 원인 중 하나는 중복 규제다. 현재 키즈카페 내 기구는 유형에 따라 행정안전부, 문체부로부터 각각 안전 감독·점검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신고·허가 신청을 하지 못해 관리 대상에서 빠지는 키즈카페도 생기는 게 현실이다.
양기정 한국키즈카페협회장은 "키즈카페는 포화 상태이고 저출산은 심해지고 있어 고민"이라며 "키즈카페가 아이들이 부담 없는 가격으로 뛰어노는 시설로 지속 가능하려면 안전을 잘 챙기고 새로운 놀이 문화에 잘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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