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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못 낳아" 정부 지원에도 분만 취약지 병원 외면 받는 이유는

입력
2024.05.10 13:00
수정
2024.05.13 14:0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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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가 또 죽었다: 고위험 임신의 경고]
분만 취약지 매년 증가… 전체 시군구 43%
58곳에 113억 지원에도 관내 분만 22%뿐
강원 양구·영월 분만병원 있지만 출산 0건
응급대처 못하고 시설 열악해 산모들 기피
일반 분만병원도 저출생 여파 경영난 심각

편집자주

11년간 아기를 낳다가 사망한 산모는 389명. 만혼·노산·시험관·식습관 변화로 고위험 임신 비중은 늘고 있지만, 분만 인프라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100일 동안 모성사망 유족 13명, 산과 의료진 55명의 이야기를 통해 산모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붕괴가 시작된 의료 현장을 살펴보고 안전한 출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고민했습니다.

챗GPT 달리4.0 이미지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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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인제군의 한 골목길. 그곳에서 진돗개가 뛰어나올 줄은 몰랐다. 차와 진돗개가 부딪치면서 범퍼는 깨져버렸다. 시속 10~20㎞ 수준이었지만 충격은 컸다. 둘째를 임신했던 정한솔(32)씨는 태동이 느껴지지 않자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인제 고려병원으로 급히 향했다. 초음파 검사 결과 아이에게 별문제는 없었지만, 이 병원마저 없었으면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속초나 홍천까지 이동해야 했다. 정씨는 "집 근처에 산전 진찰이 가능한 병원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정씨는 그러나 이 병원에서 둘째를 출산하지 않았다. 의사는 친절했지만 고령이었고, 대학병원과 한 시간 이상 떨어져 있어 응급상황 대처가 어려워 보였다. 결국 정씨는 춘천의 한 산부인과에서 지난해 12월 25일 둘째를 낳았다.

춘천보다 더 가까운 곳에 분만병원이 있긴 하다. 집을 기준으로 따져 보면 인제 → 속초 → 홍천 → 춘천 순으로 멀었지만, 병원을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은 응급상황 대처 능력이었다. 첫째를 제왕절개로 출산한 상황에서 1년도 안 돼 생긴 둘째까지 제왕절개로 낳으면 자궁 파열이 올 수 있다는 의료진 경고도 있었다. 속초의료원도 분만이 가능했지만, 결국 강원대병원과 가까운 춘천의 분만병원을 택했다.

정씨는 "홍천 아름다운병원이 정부의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에 해당돼 2023년 2월 분만을 재개했지만 6개월 만에 다시 문을 닫았다"며 "정부가 진심으로 저출생 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분만취약지 108개, 매년 증가 추세

저출생의 영향으로 분만 취약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방에 살수록 아기를 낳고 싶어도 분만병원이 사라져 원정 출산을 해야 한다. 현재 분만 취약지는 108개로 전국 시군구 250곳 중 43.2%에 이른다. 분만 취약지는 1시간 이내에 분만실 접근이 불가능하면서 가임인구 비율이 30% 이상이고, 1시간 내 분만실 접근이 가능하지만 의료서비스 이용 비율이 30% 미만 지역을 말한다. 가임인구가 부족해 산부인과 운영이 어려운 곳도 포함된다.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11년부터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분만 의료 서비스가 취약한 곳에 산부인과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시설·운영비를 지원해주고, 분만실 설치가 불가능하면 외래·순환진료라도 할 수 있도록 산부인과 개원을 지원하고 있다. 첫해 충북 영동병원 등 3개 병원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58개 병원으로 늘릴 예정이다. 사업 예산도 꾸준히 증가해 2011년 첫해엔 18억 원 정도였지만 2023년에는 113억 원으로 늘어났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산모 없는 분만병원…10명 중 8명은 원정출산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사업 효과는 미미하다. 한국일보가 9일 보건복지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분만 취약지 33곳(분만병원 지원)의 관내 분만율을 확인해 보니, 평균 22.5%(지난해 기준)에 그쳤다. 정부가 지원을 하고 있는데도, 10명 중 8명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군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출산을 했다는 의미다. 강원 양구군과 영월군은 분만병원이 있는데도 1명도 관내에서 아기를 낳지 않았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원인은 여러 가지다. △시설 낙후 △의료진 신뢰 하락 △소아과 등 협진 불가 △응급상황 대처 어려움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의료진들도 공감하고 있었다. 한국일보가 지난 3월 분만 취약지 지원대상 병원 16곳을 포함해 지역 분만병원 30곳의 산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산모들이 지역 분만을 기피하는 이유'로 노후된 산부인과 환경(29.4%)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산후조리원 부재(21.6%) △관내 응급의료기관 부재(13.7%) △의료진을 향한 불신(11.8%) △지역 산부인과 이용 중 부정적 경험(9.8%) 순이었다.

의료사고 위험, 의사도 분만 취약지 기피

'의료진의 분만 취약지 근무 기피 이유'에 대해선 '의료사고 및 소송 위험성'(40.4%)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자녀 교육 등 주변 환경 열악(33.3%) △급여 부족(16.7%)이 뒤를 이었다. 설문에 응한 속초의료원 산과의는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이 성공하려면 산부인과·소아과·마취과 인력뿐 아니라 위급상황 발생 시 상급병원으로의 신속한 이송체계 확립 및 분만 인프라(쾌적한 분만환경과 산후조리원)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분만실 하나 차려놓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설문에 응한 다른 병원의 산과의는 "전문의 2명이 365일 산모는 물론이고 응급 부인과 환자까지 담당하고 있다"며 "산모가 무통 분만을 원하지만 마취의가 없어 못 해주고 있다. 특히 야간분만이나 응급상황 때는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럼에도 분만 취약지 사업 자체에 대해선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런 지원조차 없다면 현실적으로 분만실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분만 취약지 병원 16곳을 대상으로 '이 사업이 분만 취약지 해소에 기여하느냐'고 물었더니 56.3%가 그렇다고 답했다. '분만의료 유지에 동기부여를 제공한다'(55.6%)는 이유가 가장 컸다. '사업에 꾸준히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93.8%가 그렇다고 답했다. 설문에 참여한 분만 취약지 산과 의사들은 "현재 수가로는 분만 취약지에서 개인병원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공공의료정책으로 이런 적자를 감수해야 하며, 의료사고 위험에 따른 법적 리스크를 국가가 책임진다면 분만 의사 구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분만병원 건립비 97억, 한 해 적자 20억

분만 취약지인 경기 여주시도 2014년 시립 분만병원을 설치하려다 적자 폭이 너무 커서 포기했다. 연구용역을 진행한 결과 병원 건립 비용은 97억 원, 운영비는 연간 인건비 20억 원을 포함해 43억 원이 필요했다. 정책 타당성 검토 결과 분만병원 설립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매년 20억~25억 원 적자가 예상돼 결국 건립을 포기했다. 황종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분만의료는 대규모 시설과 장비가 필요한 장치 산업"이라며 "일본·미국에선 20건만 분만을 해도 돈을 제법 벌지만, 우리는 20건을 하면 병원 유지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저출생 여파로 수도권 병원도 타격

대도시의 일반 분만병원도 상황이 안 좋은 건 마찬가지다. 저출생 여파는 분만 취약지에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융단폭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일반 분만병원 14곳을 대상으로 재정 상황을 물었더니 '매우 안 좋다' 50%, '안 좋다'가 50%로 모든 병원이 안 좋다고 답했다. 이유도 심플하다. '턱없이 부족한 분만 수가'가 50%, '산모 감소'가 50%였다. 충청권의 한 분만병원 원장은 "분만실, 수술실, 조리원만큼은 24시간 운영돼 3교대가 반드시 필요하며 파트당 최소 10명씩, 총 30여 명의 직원이 있어야 한다"며 "이 정도 인프라가 유지되려면 한 달에 분만 50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4월 2일 충북 영동병원 분만실에 불이 꺼져 있다. 영동=정다빈 기자

지난 4월 2일 충북 영동병원 분만실에 불이 꺼져 있다. 영동=정다빈 기자

수도권의 일부 대형 분만병원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서울 관악구에선 분만병원 한 곳만 생존해 있다. 서울 집값이 뛰면서 신혼부부들이 경기 지역으로 밀려난 영향이 크다. 관악구 인구는 50만여 명에 이르지만 연간 태어나는 아이는 1,800여 명 수준으로 2009년(4,800여 명)보다 62.5% 줄었다. 가연관악산부인과의 신인한 원장은 "2012년에는 2,500건의 분만을 받았지만 현재는 640건으로 떨어졌다"며 "간신히 적자만 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만 수가 올렸지만, 턱없이 부족…대도시 분만병원 역차별

정부도 분만 인프라 붕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난해 말 부랴부랴 수가를 올렸다. 10년간 분만병원이 36.7%(2012년 729개소 → 2022년 561개소) 감소하자 내놓은 대책이다. 특별‧광역시 등 대도시를 제외한 의료기관에는 분만 1건당 ‘지역 수가’ 55만 원을 추가 지급했고, 산과 전문의가 상주하고 분만실을 보유한 병원에는 '안정 정책 수가'를 도입해 분만 1건당 55만 원을 추가 보상했다. 기존보다 55만~110만 원이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탁상행정이란 비판이 많다. 강서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원장은 "서울 강서구가 판교와 분당보다 사정이 안 좋은데도 특별시라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수가를 적게 받고 있다"며 "서울 강동구 분만병원이 사경을 헤매는 사이, 이웃한 경기 하남 분만병원은 지역 수가를 재원 삼아 강동구 간호사들을 스카우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광역시도 사정은 비슷하다. 광주에덴병원의 허정 원장은 "전남 장성군에는 산부인과 자체가 없고, 완도와 순천, 남원까지 우리 병원에 와서 애를 낳는다"며 "분만은 생활권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광주는 광역시라고 지역 수가를 안 주고 전남은 준다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 밝혔다.

산과 의사들은 지역 분만병원은 사라지고 고위험 산모 치료가 가능한 대학병원만 살아남는 구조도 경계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남은 유일한 분만병원인 린여성병원의 신봉신 원장(분만병원협회장)은 "지역 분만병원이 붕괴된다면 젊은 의사들은 갈 곳이 없어 더욱 더 산과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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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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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연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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