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솔올미술관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전
아그네스 마틴(1912~2004)은 '추상화가의 선구자'로 불리며 20세기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다. 1950년대 이후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마틴의 국내 첫 개인전이 강원도 강릉 솔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작가의 개인전은 준비 기간만 수년에 이르는 게 보통으로, 올해 2월 개관한 신생 미술관이 마틴의 주요 작품 54점을 한데 모은 전시를 성사시킨 것은 이례적이다.
새로 생긴 작은 지역 미술관의 국제 전시 비법?
"미술관 건물이 지어지지도 않았을 때부터 '아그네스 마틴 개인전을 하겠다'고 했더니 미술계 사람들이 모두 '불가능하다'더군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김석모 솔올미술관장의 말이다. 그래서 그는 미술관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인 프란시스 모리스(65) 영국 테이트 모던 명예관장에게 2년 전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 도움을 구했다. 솔올미술관이 내세울 만한 소장품도 없을 때였다.
모리스 명예관장을 객원 큐레이터로 위촉하는 게 목표였다. 그는 '세계 미술관 중 현대미술 분야 영향력 1위' 등의 타이틀을 가진 테이트 모던의 큐레이터로 출발해 2016년부터 7년간 관장을 지냈다. 2015년엔 마틴의 대규모 회고전을 테이트 모던에서 열었다.
아그네스 마틴 작품 대여의 비법은 바로 '이 사람'
김 관장의 성의에 모리스 명예관장이 화답했다. "들어본 적 없는 한국의 한 마을에 생길 새로운 미술관 전시를 큐레이션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굉장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아그네스 마틴의 전시회가 한국에서 한 번도 열린 적 없다는 것에도 놀랐지요."
기자간담회에서 모리스 명예관장은 이렇게 회고하며 "이번 전시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공동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2년 이상 협업하며 유럽, 미국, 아시아 전역에서 마틴 작품 대여를 성사시켰다.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 "마틴의 작품과 그가 활동한 시대를 그리는 데에 이보다 더 완벽한 결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틴은 선불교와 도교 영향을 받아 원형, 삼각형, 사각형 같은 기하학적 도상을 차분한 색상으로 수행하듯 그렸다. 1977년에서 1992년 사이 제작된 대표작인 회색 모노크롬(단색화) 회화와 함께 1950~1960년대 초기작이 나왔다. 대형 캔버스를 오로지 직사각 격자로만 채워 넣은 1964년작 '나무'(리움미술관 소장)가 처음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공개된다.
2004년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간 마틴은 양로원과 작업실을 오가며 붓을 놓지 않았는데, 파스텔 톤의 포근한 연분홍, 연파랑, 아이보리 색을 쓴 작품을 내놓으며 예술 여정을 마무리했다. '순수한 사랑(1999)' 연작 8점이 이 시기 작품이다.
올 8월부터 강릉시 이관... 솔올미술관 미래는?
개관 3개월째인 솔올미술관은 굵직한 해외 작가 전시를 유치하고 누적 유료 관람객 수 2만7,000명을 동원하며 성공적인 지역 미술관 사례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올해 8월 아그네스 마틴전이 끝난 후 미술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미술관은 강릉시 소유 부지 인근에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의 기부채납을 전제로 지어졌다.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이 2022년 11월부터 위탁운영을 맡았는데 이번 전시를 마지막으로 계약이 종료된다. 8월부터는 강릉시에 미술관이 이관되지만 운영 계획도 없고 운영 예산도 제대로 책정되지 않았다. 양질의 전시가 1, 2년의 준비 기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술관이 상당 기간 '개점휴업' 상태로 남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솔올미술관 관계자는 "미술관의 지속 가능성을 우려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지만 강릉시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며 "솔올미술관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시립미술관 솔올분관' 같은 형식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풍문만 지역 사회에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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