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부상하며 관련 인프라 투자 시급
경쟁력 갖추려면 막대한 재원 필요한데
‘나랏돈 쪼개 푼돈 나눠주기’부터 중단을
“전 국민에게 25만 원을 지급하고, 국가 R&D 예산 회복을 위해 추경을 하자.” “물가 금리 재정 상황 등 때문에 불가하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회동에서 주고받은 재정정책 의제는 이게 고작이다.
지금 여야 재정정책은 서로 다른 듯 닮은 쌍둥이다. 여당은 야당의 민생지원금 지급을 ‘퍼주기 포퓰리즘’이라며 죄악시한다. 반면 야당은 정부의 다주택자 종부세나 주식투자소득세 비과세를 ‘부자 감세’라며 저지하려 한다. 하지만 두 정책은 모두 나라 곳간을 비운다는 점에서 종착점이 같다. 퍼주기는 나랏돈이 주로 경제 약자에게, 감세는 주로 부자에게 흘러간다는 점이 다른 정도다.
세계 경제가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나랏돈을 쪼개 푼돈으로 민간에 나눠주는 것은 자칫 국가 경쟁력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국가 과제가 경제활동인구 감소를 비롯해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 가장 시급한 것이 인공지능(AI)의 전면적 부상이다. 지난 2일 한국일보 주최 한국포럼 ‘K-AI 시대를 열다’에 참석한 각 분야 전문가의 제언은 모두 막대한 투자가 그 전제에 깔려 있다. 또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자금이 더 필요한데 바로 전력 인프라다. AI가 이미지 하나를 생성하는 데 스마트폰 한 대를 충전할 전력이 필요하다. AI 모델을 훈련하려면 가솔린차 63대를 1년 동안 가동하는 만큼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세계 전력 수요가 2022년 대비 최대 150% 늘어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충분한 전력 확보가 향후 국가 경쟁력의 우열을 결정할 것이다. 이는 발전소를 늘리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송전 시설 확대와 고도화에도 큰돈이 필요하다. 2040년까지 추가와 교체에 필요한 전력선은 지구를 2,000번 휘감을 길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활용을 늘리기 위한 송배전 시설 고도화도 시급하다.
이를 위한 천문학적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국가가 세계 경제를 선도할 것이다. 지금 한국은 경제력 대비 전력 생산이나 신재생에너지 비중에서 경쟁국보다 뒤떨어져 있다. 대통령이 50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발전소 건설 차질로 반도체 공장을 6년째 착공조차 못 하는 현실은 한국 전력 정책의 실패를 상징한다.
이런 난제를 더 이상 적자투성이 한국전력에만 맡길 수 없다. 결국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하며, 예산도 적극 투입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들어갈 막대한 재원을 생각하면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 나눠주는 데 필요한 13조 원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다주택자 종부세나 주식투자소득세 비과세 등에 나설 여유도 없다. 당장 증세에 나서기 힘든 경제 상황이라면 적어도 나랏돈을 푼돈으로 쪼개 나눠주는 것부터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 기반 시설 확충에 필요한 예산 마련을 위해 증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 세금은 누가 부담해야 할까. 부유층과 기업이 먼저다. 돈이 거기에 많을 뿐 아니라, 전력망 확충 혜택 역시 이들이 더 많이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 증세는 부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 미국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 로버트 H. 프랭크는 부유층에게 “잘 닦긴 도로에서 포르셰를 탈 것인가, 울퉁불퉁한 도로에서 페라리를 탈 것인가”라고 물었다. 정부 예산 부족으로 보수가 안 된 도로에서 페라리를 몰기보다는 세금을 더 내 매끈하게 관리된 도로에서 약간 더 싼 포르셰의 가속페달을 밟는 게 더 높은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유층 세금 부담이 커진 만큼 소비 여력이 줄어든다면, 부유층이 고객인 페라리 가격도 내려가, 잘 닦인 도로에서 페라리를 타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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