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달 초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3월 김포시 공무원이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조치다. ‘온라인 좌표찍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공무원 개인정보는 비공개 처리가 가능하도록 하고, 민원인이 폭언을 하면 담당 공무원이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악성 민원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는 오래다. 작년 8월 경기도에서는 부동산 서류 발급이 거절됐다는 이유로 고성을 지르는 민원인을 응대하던 공무원이 실신한 뒤 끝내 사망했다. 2021년 7월 부산에선 민원인이 공무원을 밖으로 불러내 무릎을 꿇린 뒤 가슴을 발로 차는 등 무차별 폭행을 하는 일도 있었다. 같은 해 1월 서울에서 불법 주∙정차 과태료 민원에 시달리던 경력 1년 차 공무원이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김포 사건 이후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는 홈페이지에 공개해오던 공무원 성명과 업무 등을 비공개로 바꾸고, 일부 기관은 부서 출입문 앞 직원 배치도와 사진도 없앴다고 한다. 심지어 지방 한 구청은 홈페이지에 선출직인 구청장 이름까지 지웠다. 이번 행안부 대책에서도 기관별로 실명 비공개를 할 수 있도록 했으니 이런 움직임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공무원 보호가 필요하다고 무차별적 익명 전환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지금도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에 민원 상담을 하려면 “담당부서가 아니다”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 등의 답변만 듣다 허탕을 치는 경우가 많다. 업무 담당자를 비공개로 한다면 이런 일은 더욱 비일비재해질 것이다. 익명 뒤에 숨어 행정의 투명성을 저해할 소지도 다분하다. 주요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참여한 관련자의 직급과 성명 등을 기록하도록 한 정책실명제와도 충돌한다. 민원인 폭언 시 공무원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한 조치 또한 악용을 막으려면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가 터질 때마다 급격한 대책 쏠림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교사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학생인권조례를 없애는 것이 논란이 되듯, 공무원 보호를 위해 정상 민원의 장벽까지 대폭 높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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