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축제된 '부처님 오신 날']
종교적 색채보다 체험 강조한 행사
"청년·외국인 등 일반 관람객 늘어"
인기 상징 뉴진스님 디제잉 공연도
"엄마, '극락(極樂)의 맛'이 뭐예요?" "응. 엄청 맛있다는 뜻이야."
석가탄신일을 사흘 앞둔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조계사 앞 우정국로는 수만 명의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말을 맞아 가족과 연인, 외국인 관광객 등 다양한 관람객들이 연등회를 보러 나들이를 했다. 거리 양 옆으로 늘어선 '전통문화 마당' 부스에는 사찰 음식과 불교 명상 등을 체험하기 위한 줄이 끝이 보이질 않았다. 또 하늘에는 무지개빛깔 연등이, 어린이들 손엔 '극락의 맛'이라며 홍보하는 연꽃 모양 솜사탕이 쥐어져 있었다. 다섯 살 아들과 구경 온 직장인 이선정(37)씨는 "불자는 아니지만,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 왔다"면서 "종교라기 보다 전통문화라는 느낌이 강해서인지 거부감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불교의 인기가 뜨겁다. 특유의 포용적 교리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최근 종교적 권위를 허무는 파격 시도가 진입 장벽을 낮췄다는 평가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서울 도심에서 열린 대규모 행사에도 아이부터 청년, 노인들까지 대거 참석해 고공행진 중인 불교의 인기를 입증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등 불교계 종단들로 구성된 연등회보존위원회는 10~12일 광화문 일대에서 석가탄신일을 기념하는 '연등회'를 개최했다. 연등회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1,200년간 이어져 내려온 전통문화 행사로, 2020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종교행사지만 주최 측은 일반 시민들이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체험 프로그램으로 행사장을 채웠다. 이날 전통문화 마당에는 종이 연꽃 만들기부터 캘리그래피(손글씨), 불교 문양 그리기, 명상 등 116개 부스가 시민들을 맞이했다. 캘리그래피도 '연꽃처럼 맑고 향기롭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등 종교적 색채를 빼고 일상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문구가 대부분이었다. 아빠 손을 잡고 온 이보람(7)양은 "동생보다 내 글씨가 더 예쁘다"며 흡족한 표정으로 직접 그린 불교 문양을 내보였다.
관광차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조계사를 뒤덮은 연등에 환호성을 지르고 나물 등 사찰 음식을 맛보는가 하면, 캘리그래피로 불교의 가르침을 써보는 등 시종 진지한 자세로 체험 행사에 임했다. 프랑스 관광객 라파엘(54) 부부는 "평소에도 불교에 호기심이 있었는데 하늘을 수놓은 연등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연등회를 준비한 위원회 측도 예상보다 많은 참여와 호평에 웃음꽃이 떠니질 않았다. 전날 오후 진행된 연등행렬은 비가 많이 내린 탓에 관람객이 적었으나, 이날은 화창한 날씨에 관람객이 대거 몰려 예년 참여 수준을 훌쩍 웃돌았다고 한다. 임융창 연등회보존위원회 사무팀장은 "가족 단위로 오는 분들이 많아 누구나 쉽게 체험할 수 있는 행사 위주로 준비했다"면서 "지난해보다 외국인 관람객이 증가한 것도 고무적"이라고 강조했다.
뭐니뭐니 해도 올해 연등회의 하이라이트는 이날 야간에 펼쳐질 '뉴진스님'의 디제잉 공연. 법명 뉴진스님으로 활동하는 개그맨 윤성호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디제잉은 기존 종교행사의 틀에서 벗어나 최근 불교의 인기를 이끄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대학생 이새롬(22)씨는 "남자친구와 데이트 겸 나왔는데 스님들이 너무 친절해서 깜짝 놀랐다"며 "밤 늦게 열리는 공연이지만 끝까지 관람하고 귀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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