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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출신 142명, 로펌·증권·보험사 취업"... 질긴 '금융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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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금감원 출신 142명, 로펌·증권·보험사 취업"... 질긴 '금융 카르텔'

입력
2024.05.21 04:30
수정
2024.05.21 10:55
1면
0 0

[2021~24년 취업심사 전수조사]
151명 신청, 검찰청 146명보다 많아
"금감원 출신 있으면 제재 확률 떨어져"
"내부 준법 시스템 강화에 도움 줄 수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제 검찰'로 불리는 금융감독원이 전관예우 논란에 다시 휩싸였다. 최근 금감원 국장급 임원이 금감원 출신 모 금융사 부사장에게 검사 정보를 유출했다는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부터 2020년 라임펀드 사태 등에서 번번이 문제 됐던 금감원과 금융사 간 부적절한 유착 관계가 여전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취임 이후 수차례 '금융 카르텔'을 깨겠다고 강조한 이복현 금감원장의 말도 공염불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취업 신청 점점 증가... 5년 차 4급도 올해 5명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20일 한국일보가 2021년부터 2024년 4월까지 인사혁신처의 취업심사자료를 전수조사한 결과, 금감원에서 민간 기관으로 이직하기 위해 심사를 받은 인원은 151명에 달했다. 취업심사 신청 건수는 2021년 36명, 2022년 37명, 2023년 53명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4월까지만 해도 벌써 25명이 취업심사를 받았다. 올 1분기 기준 금감원의 정규직 직원 수는 1,803명으로, 3년 사이 8.4%에 달하는 인원이 금감원을 떠나기 위해 취업심사를 신청했다.


금감원 출신 신청자 수는 전체 부처에서 경찰청, 국방부 다음이었으며, 검찰청(146명)보다 많았다. 민간으로 넘어가는 저연차 퇴직자도 상당수로 파악됐다. 취업심사 대상 중 입사 15년 차인 3급 직원은 39명이었으며, 입사 5년 차 이상인 4급 직원도 14명에 달했다. 특히 4급의 경우 올해 4월까지 5명이 이미 이탈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퇴직 공무원에 대한 낙하산 재취업 규제를 강화했지만, 3년간 금감원 퇴직자 151명 중 9명만이 취업 불승인 및 취업 제한 조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직자윤리법상 공무원 및 공직유관단체 직원이 퇴직하면 원칙적으로 3년간 직무 관련 업무에 종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취업하려면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퇴직 기준 5년간 직무와 취업할 기관 간 업무 관련성 등을 평가한다.

금감원 출신, 금융권에 전방위 포진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이 기간 금감원 퇴직자들이 가장 많이 이동한 곳은 역시 범금융권이다.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계로 24명이 이직했으며, 보험업계로는 22명이 재취업했다. 저축은행업권(14명), 여전업권(7명), 가상자산업권(5명), 핀테크기업(5명), 신용평가사(5명), 시중은행(3명) 등 전 금융권에 금감원 출신이 포진해있다.

이를 두고 금감원에서 쌓은 검사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민간으로 넘어가 '방패막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아무래도 평생 검사만 하다 보니 굳이 금감원 선후배가 내부 자료를 빼주지 않고 몇 마디만 전해줘도 금융권 재취업자 입장에선 검사의 방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부분 학연, 지연으로 연결돼 동문회 등 각종 모임에서 금감원과 금융사 고위직이 접촉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9년 1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금감원 출신 임원이 있는 민간 금융회사가 금감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확률은 그렇지 않은 회사에 견줘 약 16.4% 낮았다. 금융회사가 금감원 출신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이에 공직자 재취업 규제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민석 금융피해자연대 고문 변호사는 "금감원에서 금융사를 검사했던 노하우를 그대로 방어 논리로 가져다 쓰고 있다"며 "검사기술이 과학기술처럼 빠르게 바뀌지 않는 만큼 잠깐 3년만 다른 곳에 갔다가 재취업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비금융권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인원도 18명이었다. 퇴직한 지 3년 이후 재취업한 경우 취업심사를 받지 않아도 돼 비금융권에 머물다가 금융권으로 넘어간 금감원 출신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로펌 간 전직 만나지 말라" 자제령 떨어지기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뉴시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뉴시스

최근에는 로펌들도 금감원 출신을 대거 영입하는 추세다. 금융사고가 복잡해지고 관련 피해도 커지면서 금융사와 당국 간 법적으로 다툴 만한 사건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관련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해서도 주요 은행은 김앤장, 화우, 율촌, 세종, 광장 등 대형 로펌과 자문 계약을 맺었다. 이러자 이 원장이 직접 직원들에게 "로펌으로 이직한 금감원 출신 전관들과 만남을 자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실제 조사 대상 중 총 44명(30%)이 로펌에서 고문이나 전문위원 등의 직을 맡았다. 금융권 대비 상대적으로 취업심사 허들이 낮다는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취업 불승인 및 취업 제한 조치 9건 중 로펌행은 1건에 불과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금감원 고위직 15명을 채용해 가장 적극적이었다.

물론 평생 금융 감독에 전문성을 지닌 금감원 출신이 민간 영역에서 준법 프로세스를 강화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윤석헌 전 금감원장은 "금감원 직원들이 분명히 전문성이 있는 부분이 있는 만큼 금융사에서 금감원 직원을 데려다 쓰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고 막을 수도 없다"면서 "불법을 저질렀을 때 엄격히 처벌하는 한편 전문성 있는 인력이 금감원 내부든 민간이든 적절히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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