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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최화정이 울었고, 유튜브를 시작했다...'남성 중심' 방송엔 없던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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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최화정이 울었고, 유튜브를 시작했다...'남성 중심' 방송엔 없던 '이것'

입력
2024.05.22 07:00
수정
2024.05.22 20:17
22면
0 0

최근 유튜브 개설한 두 여성 배우
'루머 당사자' 아닌 배우로서 조명하고
'삶의 태도' 집중한 유튜브 콘텐츠에 선플 가득
이혼·비혼여성에 대한 '방송가 시각'과 정반대
위로·용기 얻은 배우들 침묵 대신 소통 택해

배우 고현정은 1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여러분이 남겨준 따뜻한 마음(댓글)에 계속 눈물이 난다"는 글(왼쪽)을 올렸다. 그가 유튜브에서 공개한 일상 브이로그(오른쪽). 유튜브 캡처

배우 고현정은 1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여러분이 남겨준 따뜻한 마음(댓글)에 계속 눈물이 난다"는 글(왼쪽)을 올렸다. 그가 유튜브에서 공개한 일상 브이로그(오른쪽). 유튜브 캡처


배우 고현정은 최근 유튜브를 개설해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고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배우 고현정은 최근 유튜브를 개설해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고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 배우 고현정은 이달 중순 자신의 일상을 전하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신비주의 배우’의 대명사로 꼽히던 35년 차 배우가 팬들과의 직접 소통에 나선 것. 그를 움직인 건 다름 아닌 댓글이었다. 그는 지난 1월 가수 정재형의 유튜브 토크쇼 ‘요정식탁’에 출연했는데, 고현정과의 따뜻한 일화를 추억하거나 그를 응원하는 댓글이 1만 개 넘게 달렸다. 고현정은 자신의 채널 첫 영상에서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디(방송에) 나가서 그렇게 좋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너무 좋은 말(댓글)을 많이 듣고 막 엉엉 울었어요. (그동안은) 진짜 나쁜 말만 많이 들었거든요. ‘아 다 나를 싫어하진 않는구나’ 하는 오해가 풀렸어요.”

#. 배우 최화정도 1년간의 고민 끝에 이달 초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고민에 마침표를 찍은 것 역시 응원 댓글. 그가 지난해 출연한 홍진경의 유튜브 채널 ‘공부왕찐천재’의 영상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이렇게 빛나나보다” “저렇게 늙고 싶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최화정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댓글 보고) 울 뻔했다. 무슨 댓글이 이렇게 좋아. 만날 '죽어라' '이쁜 척' 이런 것만 있다가 (좋은 댓글을 보니) 너무 좋더라"고 감격해했다.

최화정이 최근 자신의 유튜브에서 좋은 댓글들을 보고 "울 뻔했다"고 말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최화정이 최근 자신의 유튜브에서 좋은 댓글들을 보고 "울 뻔했다"고 말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진심이 담긴 댓글이 루머와 악플에 지친 연예인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런 응원에 용기를 낸 스타들이 소통을 닫고 침묵하는 대신 팬들과 소통을 늘리기로 결심하는 선순환도 시작됐다. 악플이 오랫동안 연예인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했지만, 좋은 댓글이 많아지고 연예인들 역시 이에 주목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여성 배우에 대한 '옳은 관점'이 만든 변화

가수 정재형은 지난 1월 자신의 유튜브 토크쇼 '요정식탁'에서 고현정 관련 루머를 듣고 "아 그랬대?"라며 호응한 것을 사과했다. 유튜브 캡처

가수 정재형은 지난 1월 자신의 유튜브 토크쇼 '요정식탁'에서 고현정 관련 루머를 듣고 "아 그랬대?"라며 호응한 것을 사과했다. 유튜브 캡처

변화의 시작은 배우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고현정이 2009년 MBC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 출연 후 15년 만에 나온 토크쇼인 ‘요정식탁’은 배우로서 그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되짚었다. 고현정과 관련한 루머들에 대해 진행자 정재형은 “(너에 대한) 가십을 듣고 ‘어 그랬어?’라고 한 걸 사과할게. 너의 마음을 짐작해 보자면, 그때 웃지라도 않았어야 했다”고 사과했다. 악의 없는 호응과 방관조차 루머 당사자에겐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감지한, 새 시대에 맞는 감수성이었다. 덕분에 고현정은 치유를, 시청자들은 각성을 할 수 있었다.

‘무릎팍도사’는 당시 이미 6년 전 이혼한 고현정에게 ‘전 남편과의 첫 만남은 어땠느냐’,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겠느냐’ 등 무례한 질문을 쏟아내며 ‘여배우 루머’에만 집중했다. 남성 중심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방송가가 부장제의 틀에서 벗어난 여성 배우를 소비하는 방식이었다.

비혼인 최화정 역시 방송에서 자신의 성정체성과 연애 관련 루머를 거듭 해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루머는 더욱 확산됐고, 루머는 배우로서의 능력과 인간적인 매력까지 뒤덮어버리곤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유튜브 토크쇼들은 방송이 연예인을 소비하는 방식과 다르게 진솔한 접근을 많이 한다”며 "루머 동조에 대한 정재형의 사과도 좋은 접근"이라고 말했다.

2009년 방송된 MBC '무릎팍도사'에서 MC 강호동은 이미 2003년 이혼한 고현정에게 "양가 허락하에 교제했느냐"며 전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 생활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했다. MBC 캡처

2009년 방송된 MBC '무릎팍도사'에서 MC 강호동은 이미 2003년 이혼한 고현정에게 "양가 허락하에 교제했느냐"며 전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 생활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했다. MBC 캡처


최화정이 지난해 출연한 홍진경의 유튜브 영상에서 환갑을 기념해 자기 자신에게 선물해준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영상은 최화정의 집과 일상에 스며 있는 그의 삶의 태도에 집중했다. 유튜브 캡처

최화정이 지난해 출연한 홍진경의 유튜브 영상에서 환갑을 기념해 자기 자신에게 선물해준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영상은 최화정의 집과 일상에 스며 있는 그의 삶의 태도에 집중했다. 유튜브 캡처


팬들도 편견을 걷어낸 연예인의 모습을 반겼다. 방송이 편집해 보여준 모습이 아닌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연예인의 진짜 모습을 적극 공유했다. 고현정이 선덕여왕을 연기한 MBC 드라마 ‘선덕여왕’(2009) 엑스트라였다고 밝힌 이는 고현정의 ‘요정식탁’ 영상에 “모든 엑스트라에게 웃으며 밥먹었냐고 인사해 주시던 현정 언니 그 모습이 생생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고현정이 이용한 미용실 직원이었다는 이는 “늘 존대해 주셨고 제 크리스마스 카드 답례로 저금통을 선물해주셨다”고 했고, 어머니가 세차장에서 일했다는 딸은 “엄마가 예의 바르고 사인도 해줬다며 잊지 못한다. 세차하는 아줌마한테도 잘 대해줘서 감사하다”며 고현정을 응원했다.

포털 사이트에선 기사 제목만 대충 보고 악플부터 달지만, 유튜브에선 비슷한 지향과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같은 콘텐츠를 보며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선순환이기도 하다.

가수 정재형의 유튜브 '요정식탁'에 출연한 고현정 영상에 달린 댓글. 고현정과의 일화를 추억하며 감사와 응원을 전하는 댓글들이 많은 호응을 받았다. 유튜브 캡처

가수 정재형의 유튜브 '요정식탁'에 출연한 고현정 영상에 달린 댓글. 고현정과의 일화를 추억하며 감사와 응원을 전하는 댓글들이 많은 호응을 받았다. 유튜브 캡처


"악플받는 연예인일수록 더 응원해줘야"

좋은 댓글에 주목하는 연예인들도 늘고 있다. 최근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출연 후 악플 세례를 받은 김송·강원래 부부는 악플에 분노했지만, 선플도 잊지 않았다. 김송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 누리꾼의 댓글을 올리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 댓글은 “부분 편집된 영상 클립이나 자극적인 기사만 보고 함부로 말들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김송의 상처가 걱정된다면서 상처는 누가 더 주고 있느냐”고 지적한 내용이었다.

가수 보아가 악플의 고통을 호소한 후 은퇴설이 돌자 17년째 좋은 댓글 달기 운동을 해온 단체인 선플재단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보아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자”며 ‘선플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선플에 집중하며 악플을 ‘자연도태’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헌식 중원대 사회문화대 교수는 “악플을 아예 없앨 수는 없지만, 선플을 부각하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연예인들의 고통을 막을 수 있다”며 “팬들은 악플에 고통받는 연예인은 더 적극 응원해주고, 연예인들은 좋은 댓글을 소중하게 다뤄주는 선순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송은 지난달 자신의 SNS에 자신이 받은 선플을 공개하며 "감사하다"고 인사했고(왼쪽), 선플재단은 악플에 시달리는 보아를 위한 '선플 운동'을 벌였다. SNS, 선플재단 홈페이지 캡처

김송은 지난달 자신의 SNS에 자신이 받은 선플을 공개하며 "감사하다"고 인사했고(왼쪽), 선플재단은 악플에 시달리는 보아를 위한 '선플 운동'을 벌였다. SNS, 선플재단 홈페이지 캡처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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