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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장례 치러요"... 이주노동자에 100만 원 빌려준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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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장례 치러요"... 이주노동자에 100만 원 빌려준 의사

입력
2024.05.21 09:10
수정
2024.05.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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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푯값 없는 필리핀인에 돈 빌려줘
한국서 일한 돈 모아 8개월 뒤 갚아
의사 A씨 "갚으려 애쓴 거 보니 눈물"

충남 아산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씨가 지난해 필리핀 이주 노동자인 B씨에게 100만 원을 빌려줬다가 8개월 만에 돌려받은 사연이 공개됐다. 사진은 A씨가 B씨로부터 돌려받은 돈과 편지. A씨 SNS 캡처

충남 아산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씨가 지난해 필리핀 이주 노동자인 B씨에게 100만 원을 빌려줬다가 8개월 만에 돌려받은 사연이 공개됐다. 사진은 A씨가 B씨로부터 돌려받은 돈과 편지. A씨 SNS 캡처

한 의사가 필리핀 이주노동자에게 아버지 장례식 비용을 줬다가 8개월 만에 돌려받은 사연이 알려졌다.

충남 아산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1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필리핀 이주노동자 B씨로부터 받은 돈과 편지를 공개했다.

A씨에 따르면 B씨는 지난해 9월 A씨 병원에서 일주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A씨는 그가 퇴원을 하루 앞두고 병원 침대에 걸터 앉아 울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A씨에게 "필리핀에 계신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엄마가 암환자였는데 아빠가 돌보셨다"며 "어린 동생들은 돈을 못 벌고 내가 벌어 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B씨는 비행기 타고 필리핀으로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당장 비행기표 살 돈이 없어서 울고 있었다. A씨는 B씨에게 10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A씨는 "어서 필리핀에 가서 아버지 잘 모시라고, 빌려주는 거니까 나중에 돈 벌어서 갚으라고 했다"며 "그렇게 여비도 쥐여주고 퇴원비도 돈 벌어 내라 하고 필리핀에 보내주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했다.

8개월여가 지난 이달 18일 B씨가 병원을 찾아왔다. A씨는 "낮에 진료 중인데 어떤 젊은 외국인이 원장님께 드릴 게 있다며, 대기 환자가 20명이 넘는 내 진료실 밖에서 간호사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며 "무슨 일인가 보니 어디서 보던 낯익은 얼굴이길래 1분만 얘기를 들어주자 했다"고 했다.

B씨는 A씨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두꺼운 봉투와 편지를 내밀었다. B씨는 편지에서 "당신이 내게 빌려준 돈으로 아버지를 묻어드릴 수 있어서 굉장히 감사하다"며 "이 돈을 늦게 돌려줘서 정말 죄송하다"고 썼다.

A씨는 "그제야 나는 B씨가 잊지 않고 8개월 만에 돈을 갚으러 왔다는 걸 알고 눈물이 글썽여졌다. 그도 마찬가지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며 "지난해 내 도움으로 아버지를 잘 매장해 드리고, 이제는 다시 입국해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너무 늦게 갚아서 미안하다고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고국의 어려운 가족에게 송금하면서 매달 한 푼 두 푼 모아서 이렇게 꼭 갚으려고 애를 쓴 걸 보니 더 눈물이 났다"며 "20여 명의 대기 환자분들이 왜 저 사람 먼저 봐 주냐고 난리를 치는 통에 잊지 않고 와줘서 고맙다,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란다고 짧게 얘기하고, 커피 한잔도 대접 못 하고, 헤어졌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한 번 제 나라로 가면 그만인 외국인 노동자도 1년 전 빚을 갚으러 다시 남의 나라로 비행기 타고 돌아왔는데, 나는 주변에 진 빚을 제대로 갚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오늘은 100만 원의 돈보다, B씨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한없이 기쁘다"고 글을 맺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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