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금융인들은 날마다 증권사끼리 경쟁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증권사 밖에서는 누구도 증권사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세계에서 살아간다."
'파이낸셜타임스' 편집국장이자 인류학 박사인 질리언 테트는 책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금융인 포럼을 취재했던 일화를 담았다. 저자는 금융 혁신에 관한 모형과 차트로 가득한 파워 포인트, 그들만의 은어 섞인 농담이 오가는 현장에서 의아한 점을 포착한다. "금융인들의 파워포인트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중략) '그런데 누가 이 돈을 빌리지? 인간은 어디에 있지? 이 개념이 실생활과 어떻게 연결되지?'"
이 구절을 읽으며 한국 정치 환경을 떠올렸다. 정당과 인물의 셈법을 설명할 때 우리는 '여의도 정치'라는 표현을 쓴다. 정치계에서 통용되는 농담이나 은어를 '여의도 사투리'라고 한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은 일반 시민이 이해하기 어렵고 또 알아서도 안 되는 심오한 세계인 것처럼 말이다. 시민을 대변할 역할로 뽑은 이들이 시민과 괴리된 싸움에 골몰하고 있는 게 의아하게 느껴졌다.
내가 만약 인류학자가 되어 국회의원의 하루를 따라 다닌다면, 보고 싶은 게 있다. 정치인은 하루에 유권자를 얼마나 만날까? 만나는 유권자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일을 하고 평소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까?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일까? 반대로 정치인이 실제로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 그래서 중요한 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는 사람은 누굴까? 누구와의 대화를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까?
정치인의 렌즈가 좁아진 시대다. 정치인은 이제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의 파트너로 팬덤으로 불리는 강성 지지자를 떠올린다. 정치인은 팬덤의 환호를 받을 수 있는 결정을 내리고 미디어는 그 결정에 환호하며 결집력을 끈끈하게 만든다. 피드백이 재빠르고 파급력이 크니까 도파민이 '뿜뿜'할 거다. 쉽게 환호받을 결정을 내리다 보니 입법의 양이나 질과 같은 본질보다 상대 당을 물어뜯고 내 몸집을 키우는 경쟁이 정치 활동의 우선순위가 된다. 그들만의 공동체가 계속 강화된다.
22대 국회가 곧 시작된다. 지금의 정치 현실이 바뀔까 질문해 보면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닌 것 같고, 대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질문하면 막막하다. 일단은 초당적 정치인이 모여서 매주 한 번 지역을 바꿔 가며 유권자를 만나면 어떨까? 기왕이면 정당에 대한 지지가 분명하지 않은 시민들, 성별과 연령이 다양한 시민들, 일터가 다르고 소득이 다르고 원하는 정책이 다른 사람들로 만나면 좋겠다. 양당의 50대 중산층 남성이 표준이 된 제22대 국회에는 이처럼 아주 사소하고 기초적인 처방인 '만남'과 '대화'가 사실은 절실한 해법일지 모른다.
좁아진 시야는 정치인을 조급하게 만든다. 하지만 반대의 사례도 있다. 민주당 텃밭으로 불리는 서울시 도봉구갑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김재섭 당선자는 선거를 준비한 4년 동안 당에서 내려온 현수막을 걸지 않았다. 주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묻거나 예방접종 등 지원 정책을 홍보했다. 그는 선거 직전까지 여론조사에서 졌지만 결과는 달랐다. 여론조사 지지도와 좋아요 수라는 좁은 세계에서 알려 주는 '알고 있다는 착각'을 벗어나면 넓은 정치, 자기 정치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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