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구식 미제 헬기 타다가 사망"
'경제 파탄 낸 무능 정권' 비판 확산 조짐
"보궐선거 앞두고 내부 통제 강화될 것"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사망 이후 이란 정부의 대내 정책은 더 강경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가 권력 서열 2위인 대통령이 '구식 미국산 헬기'에 탑승했다가 추락 사고로 사망한 데 따른 반(反)정부 여론을 억누르기 위해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현지시간) 이란 전문가 및 현지 언론인 등을 인용해 이같이 전망했다.
50년 된 헬기에 VIP 이동 맡겨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 사건은 이란 정권의 무능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이시 대통령은 지난 19일 미국 헬기 제조업체 '벨헬리콥터'의 '벨-212'에 탑승했는데, 이는 1968년에 처음 선보인 낡은 기종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는 이란은 이를 대체할 새 헬기를 구하지 못했고, 이란 공군은 정부 고위직 수송용으로 벨-212 5대를 편성해 활용하고 있다. 적국이 만든 낡은 헬기에 정부 핵심 인사의 이동을 맡길 만큼 국가 상황이 엉망인 셈이다.
사고 원인으로 '기기 결함'에 무게가 실리는 것 역시 이란 정부에는 부담이다. 일각에서는 이스라엘 등에 의한 암살이란 음모론도 제기되지만, 기기 노후화에 따른 사고라는 추정이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이란 정부의 통제를 받는 국영 IRNA통신은 이날 이 사고를 "기술적 고장으로 인한 추락 사고"로 기술했고, 사고 수색을 지원했던 튀르키예 정부도 기기 결함설을 지지하는 초동 조사 결과를 내놨다. 헬기의 고도와 위치 정보를 발신하는 응답기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1979년 미국 제재 이후 이란 정부는 미국산 부품이 10% 이상 포함된 항공기를 구매할 수 없게 됐다"며 "러시아 역시 미국 부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란은 모스크바에서도 항공기를 조달할 수 없었다"고 짚었다. 1979년부터 지난해까지 이란에서는 비행기 추락사고 253건이 발생해 3,335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로 평가된다.
"이란인들, 국가에 의문 가질 것"
전문가들은 이란 내 반체제 정서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이란 국민들은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끌고 간 집권 세력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지난 3월 이란 총선 투표율이 역대 최저치인 41%를 찍은 것이 대표적인 신호다. 이란 전문가 제이슨 레자이안은 이날 WP 기고에서 "이란인들은 '왜 국가는 위험한 비행을 없애지 못 하나' 등의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 정부는 강경 탄압으로 맞설 조짐이다. WP는 이날 테헤란의 한 언론인이 이 사건과 관련 이란 정부의 압력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라이시 대통령이 "사망했다(killed)"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자, 이란 정보당국으로부터 "'순교'로 수정하지 않으면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헬기 추락 사고를 순교로 치장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독일 국제안보연구소(SWP)의 하미드레자 아지지 연구원은 WP에 "내달 28일 대통령 보궐선거가 예정된 상황에서 사회 및 정치 활동에 대한 통제는 더욱 엄격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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