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기후위기 헌법소원' 2차 공개변론
“저에게 기후재난은 이미 현실입니다. 2022년 8월 하루 동안 엄청나게 비가 쏟아져 저희 집 1층이 물에 잠겼습니다. 어른들은 ‘어린애가 뭘 알겠냐’고 무시했지만,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은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나중으로 미룬다면 우리의 미래도 물에 잠기듯 사라질 것입니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서울 흑석초 6학년 한제아(12)양이 또박또박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아기기후소송의 청구인인 예순한 명의 동생과 두 살 사촌동생 아윤이를 대신해 이 자리에 섰다"는 제아양에게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은 "떨지 말고 잘 얘기하라"고 격려했다.
이날 헌재는 기후위기 헌법소원의 두 번째 공개변론을 열고 청구인들의 최종 진술을 들었다. 헌재는 2020년 3월 청소년 19명이 제기한 ‘청소년기후소송’과 시민기후소송(2021년), 아기기후소송(2022년)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2023년) 등을 병합해 심리하고 있다. 탄소중립기본법과 기본계획상 명시된 온실가스 감축목표, 즉 2030년 탄소배출량을 배출 정점인 2018년보다 40% 감축한다는 내용 등이 주요 심리대상이다. 청구인들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노력이 국민, 특히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하기에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소년의 미래를 지켜달라”며 가장 먼저 청소년기후소송을 제기했던 청구인 김서경(22)씨도 재판관들 앞에 섰다. 청소년기후소송은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청구 4년 만인 올해 들어서야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됐다.
김씨는 “청구 이후에도 탄소중립위원회 등에 참여하며 기후위기 대응책을 촉구했지만, ‘청소년은 학교 결석한 이야기나 하라’며 장식 취급을 받았다”면서 “기후위기 대응은 국제사회 약속이라거나 트렌드라서가 아니라, 우리 삶을 무너트릴 만큼의 거대한 재난이기 때문임을 헌법소원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구인인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기후위기 대응이 늦으면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팀장은 “이상기온으로 사과 농사를 망쳐버린 농부, 폭염에 열사병으로 병원에 실려간 건설노동자, 태풍이 오면 밤잠을 못 이루는 반지하방 주민 등 모두가 재난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다”며 “기후위기 시대 국가의 우선 책무가 무엇인지 헌법재판소가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판관들의 질문도 온실가스 감축 지연으로 인한 미래세대 등과의 불평등 문제에 집중됐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덕영 연세대 법학과 교수는 국가 감축목표가 소극적이라고 비판하며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배출 가능한 온실가스의 양(탄소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현재세대가 다 배출하면 미래세대는 더욱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측 참고인인 유연철 전 외교부 유엔기후대사는 "현 목표가 미래세대 필요를 충족하기는 어렵다"고 인정하면서도 "2035년 목표 수립 때 더 반영하면 될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2차 변론을 마친 재판부는 2~4개월의 추가 심리를 거쳐 결정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탄소중립기본법 개정과 기본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