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문 졸업사진 등을 이용해 음란 합성물을 만들어 퍼뜨린 서울대 졸업생들이 구속됐다. 피해자만 60명이 넘는다. 2019년 터진 ‘n번방 사태’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그런데도 경찰은 피해자들의 잇단 고소에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다”며 수사를 덮었다. 범인을 잡기까지 무려 3년이 걸렸고, 그사이 피해가 커진 것은 물론이다. 그마저도 피해자들의 집요한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그제 2021년 4월부터 최근까지 피해자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포한 혐의로 3명을 구속하고 2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피해자 60여명의 사진으로 만든 음란 합성물이 100건이 넘고, 이를 공유한 SNS 단체방이 200개에 달한다.
이번 사건은 ‘n번방 사건’을 꼭 닮았다. 익명성으로 무장한 SNS 텔레그램을 통해 장기간 범행을 지속했고, 구속된 주범 2명은 서울대 동문일 뿐 일면식도 없으면서 n번방 주범 조주빈처럼 온라인으로만 소통했다. 서로를 ‘한 몸’으로 지칭하며 끈끈한 유대관계를 쌓았다고 한다.
이들의 검거는 피해자들의 끈질긴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피해자들은 2021년 7월부터 경찰서 4곳에 각각 고소장을 접수했지만 한결같이 텔레그램 특성상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사를 종결했다. 이들은 경찰을 대신해 직접 발로 뛰며 다른 피해자를 찾아 나서고, 자료 조사를 하고, 증거를 찾았다고 한다. 특히 5년 전 ‘n번방’ 사건을 최초로 알린 ‘추적단 불꽃’은 이번에도 결정적 기여를 했다. 활동가가 2년 넘게 가해자를 쫓으며 만남을 유도한 덕에 경찰이 현장에서 잡을 수 있었다. 이 단체에 도움을 요청한 것 역시 피해자들이었다.
경찰은 피해자나 활동가 단체도 할 수 있는 일을 왜 직접 못했는지를 자문해봐야 한다. ‘n번방 사건’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된 직후였음에도 울부짖는 피해자들을 뒤로하고 수사를 어영부영 종결한 것이 타당한 일인가. 디지털 성범죄가 갈수록 극성을 부리는데 언제까지 SNS의 익명성 탓만 할 것인가. 경찰이 국민을 지켜줄 수 없다는 공권력 불신은 결국 가해자 신상 공개 등 ‘사적 제재’의 난무만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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