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밀라 팡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편집자주
인공지능(AI)과 로봇, 우주가 더는 머지않은 시대입니다. 다소 낯설지만 매혹적인 그 세계의 문을 열어 줄 SF 문학과 과학 서적을 소개합니다. SF 평론가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해 온 심완선이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과학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의 저자 카밀라 팡은 두 가지 관점을 접목한다. 하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제해결 방식이다. 저자는 생물화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과학기술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생물정보학 분야에서 일하는 과학자다. 덕분에 책에는 생물학, 화학, 열역학, 양자물리학뿐만 아니라 머신러닝, 딥러닝, 게임이론에서 차용한 여러 실용적 깨달음이 소개된다. 그리고 저자가 이토록 과학을 경유해 삶의 요령을 찾는 이유는 그녀가 신경다양인이기 때문이다.
카밀라 팡은 자폐스펙트럼장애,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 범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단순하게 말하면 과하게 눈치가 없고, 산만하고 충동적이며, 쉽게 불안에 빠지는 사람이다. 남들은 자연스럽게 익히고 해내는 사회적 행동을 그는 하나하나 어렵게 습득했다. 과학과 연결되는 두 번째 관점은 ‘방 안에 있는 외국인’이다. 그는 내부의 행동양식을 낯설어하고 실수를 저지르지만, 덕분에 남들이 의식하지 못하던 차이점을 곧잘 발견한다.
신경다양인과 신경전형인...다름을 인정하기
신경다양인은 자폐스펙트럼 등 뇌신경으로 인한 특성을 일종의 다양성으로 여기는 입장에서 나온 단어다. 예를 들어 자폐스펙트럼에 속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고맥락 대화를 어려워하고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달리 말하면 “세상을 다르게, 편견 없이 본다.” 이렇듯 신경다양성에 기인하는 특정한 모습을 장애나 결함으로 규정하기보다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신경다양인과 신경전형인이라는 단어는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보다 훨씬 느슨하다. ‘튀는’ 사람을 기존의 사회 규범에 맞게 교정하기보다 오로지 신경전형인다운 방식만을 요구하는 경직된 사회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최근 ADHD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증가하며 신경다양성 언급도 늘어났다. ADHD가 있으면 분명 여러 곤란을 겪지만 얼마든지 자신의 특성에 맞는 생활방식을 익힐 수 있다. 각자의 특성을 인정하고 그걸 출발점으로 삼으면 된다. 카밀라 팡에게 불안과 ADHD는 “지루함과 강력한 집중 상태를 넘나들면서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도록 해주는 시스템이다.
매뉴얼로 정리한 '인간이 된다는 것'
카밀라 팡은 자신의 특성으로 인해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와 관련된 질문을 수없이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그 질문들에 답할 능력도” 얻는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은 답안 작성 방법을 정리한 매뉴얼이다. 사회에서 어떻게 처신할지, 각종 어려움에 어떤 식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자신을 ‘인간이 덜 된’ ‘결함 있는’ ‘겉도는’ 존재라고 딱지를 붙이지 않고 어떻게 그저 ‘자신’이라고 확신하는지.
나도 어딘가에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예의범절이나 대인관계 규칙이 너무 모호하고 어려워서, 내용이 명확하게 정리된 책이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실제로 책으로 많은 행동을 배웠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물러서지 않는 법, 상대를 다정하게 헤아리는 법, 화난 채로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법 등. 카밀라 팡의 매뉴얼을 보니 과학 역시 유용한 듯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괴상해 보일지 몰라도,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실전 요령으로 가득한 유용한 매뉴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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