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공간 보장 안 돼... 화장실 식사도
사립대 식대 한 끼 2700원 5년째 동결
"시간 없으면 복도 의자나 화장실 변기에 앉아 간단히 한 끼를 때우기도 하죠."
2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마포구의 한 사립대. 오전 청소를 끝낸 노동자들이 하나둘 강의실 건물 지하 6층에 모였다. 그나마 운이 좋아 '휴게실'에서 밥 먹을 수 있는 날이다. 휴게실이라고 해서 번듯한 식탁이나 소파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여섯 평 작은 방 바닥에 신문지를 훌훌 깔고, 집에서 싸온 밥과 반찬을 펼친 채로 나눠 먹는 게 이들의 식사다. 열네 명이 쓰는 공간이다.
오이김치와 매실 장아찌, 상추가 이날의 메인 반찬.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오는 청소노동자들에겐 이 시간쯤 되면 시장이 반찬이다. 밥술 뜬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밥그릇은 바닥을 드러냈다. "이 일 하다 보니 빨리 먹는 게 습관이 됐어요." 식사를 마친 일부 사람들은 다시 일을 하러 나섰고, 일부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그릇들을 설거지했다. 휴게실엔 싱크대가 따로 없다.
이렇게 일터에서 두 끼를 해결하는 사립대 청소노동자들도 '식대' 명목으로 돈을 받는다. 과연 얼마일까. 한 끼당 약 2,700원. 요즘 3,000원을 넘어선 편의점 김밥 한 줄도 못 살 수준이다.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등 서울 지역 주요 사립대의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의 식대가 올해로 5년째 동결됐다. 2월 20일 13개 사립대 노동자와 용역업체의 임금 교섭에서 업체 측이 '식대·상여금 동결' 입장을 고수하며 벌써 일곱 번째로 협상이 결렬됐다. 최근 5년간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식대는 매년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같은 일 해도 식대는 달라"
청소·경비 노동자를 대학이 직접 고용하는 국공립대학과 비교할 때, 용역업체를 낀 사립대 노동자의 식대는 더 낮다. 국공립대학 노동자들은 올해부터 기획재정부의 예산편성지침에 따라 한 달에 14만 원의 식대를 받지만, 사립대 식비는 그보다 2만 원 적은 12만 원이다. 청소노동자 서모씨는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 등록금으로 책정되는 예산이지만, 너무 적은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낮은 식대도 문제지만 마음 편히 한 끼를 해결할 제대로 된 '식사 공간'도 없다. 23일 서울 성북구의 한 대학 건물을 찾았을 땐, 청소노동자 두 명이 한 평 반 정도의 휴게실 책상 위에 반찬 몇 가지를 깔아놓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12년째 청소 일을 해온 윤금순(67)씨는 "원래 이 공간이 더 좁았는데 그나마 확장을 해서 이 정도"라고 말했다.
주·야간을 번갈아가며 12시간 이상 일하는 경비노동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유리로 된 경비 초소에서 창문의 블라인드를 모두 내린 채로 밥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주로 집에서 싸 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한다는 경비노동자 강모(64)씨는 "식대가 너무 낮다 보니까 반찬 한두 가지 놓고 먹는 게 전부"라며 "좀 편안하게 밥 먹을 공간이라도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 "용역업체가 알아서" 책임전가
사립대들은 청소·경비·시설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을 외면하는 중이다. 노동자들이 용역업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해당 업체에 모든 걸 맡기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협상은 용역업체와 노조 사이에 진행되고 있다"며 "협의에서 결정된 사안을 학교에서는 수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용역업체 대부분은 "최저임금 인상액(240원)보다 더 높게 시급(270원)을 올려 식대까지 인상하긴 어렵다"거나 "이미 올해 예산이 책정된 상황이라 지금 식대를 올릴 수는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들은 '끼니의 존엄함'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계속 내기로 했다. 서울 지역 14개 대학에서 용역을 수행하는 17개 업체와 집단교섭을 해온 공공운수노동조합은 원청인 대학 측을 찾아 식대와 관련한 집회를 이어갈 방침이다. 함은선 공공운수노조 조직부장은 "국공립대와 동등한 정도만이라도 되도록 '식대를 2만 원 인상해달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며 "국공립대와 차등을 두지 말고 동일 노동에 대해선 동일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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