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노아의 방주부터 현재까지...인류와 홍수
인간에 대한 신의 노여움의 표현 노아의 방주
BC 2000년 메소포타미아 대홍수로 새로운 세계
최초의 인간 '루시' 발견, 홍수로 부식된 토양에서
4대 문명, 홍수로 비옥해진 땅에서 농사로 시작
"기후변화, 9~15년마다 전 세계 유례없는 홍수"
인류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 짚어봐야
편집자주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학 역시 오랜 역사를 거치며 정립됐습니다. 어려운 경제학을 익숙한 세계사 속 인물, 사건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경제 관료 출신으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으로 근무하는 조원경 교수가 들려주는 ‘세계사로 읽는 경제’는 2주에 한 번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후변화로 극심한 홍수가 지구촌 곳곳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게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국제연합(UN)은 최근 20년 동안 발생한 재해가 이전보다 2배 늘었다고 밝혔다. 이달 브라질 남부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멕시코에서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데 브라질에서는 폭우로 재난 지역 도시 절반이 물에 잠겼고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독일과 아프가니스탄, 미국에서도 최근 폭우를 동반한 홍수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홍수와는 다르나 물난리를 동반한 지진해일(쓰나미)도 인류를 공포로 몰아갔다. 2011년 일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가 동북부 지역 태평양 연안을 강타했다. 24m의 쓰나미는 엄청난 높이의 빌딩을 장난감처럼 뒹굴게 했다. 이에 앞서 2004년의 인도양 쓰나미는 3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았다.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재난은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를 넘어 아프리카 일부를 잠식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뉴노멀(시대 변화에 따른 새 기준)이 되고 있다. 홍수의 역사와 함의를 살펴봤다.
설화 속 홍수 이야기는 우리에게 창조로 다가온다. 성경에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있다. 하느님이 보기에 세상은 너무나 썩어 있었다. 하느님은 노아에게 전나무로 배 한 척을 만들라 명령했다. 노아는 3층 높이에 길이는 150m, 총면적은 약 9,000m²의 방주(方舟)를 만들었다. 그 안에 가족 8명과 모든 동물, 새의 암수를 한 쌍씩 배에 태웠다. 방주의 문을 닫자 비는 40일 동안 낮과 밤을 쉬지 않고 내렸다. 그리고 이내 지상의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홍수가 진정되고 방주는 아라라트산에 멈추게 되었다. 노아의 자손은 지구 곳곳으로 퍼져 나가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중국인과 튀르키예인 15명으로 구성한 기독교 계열 탐사대 노아의 방주 국제전도단이 2010년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목조 구조물을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한때 세상을 뜨겁게 했다. 튀르키예 동부 아라라트산의 해발 4,000m 지점에서 나온 물체였다. 탐사대는 목재 표본의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기원전 2800년대로 추정했다. 노아 시대와 비슷하고 동물 우리로 보이는 칸막이들이 나온 점은 지금까지 회자되게 한다.
노아의 방주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홍수와 연관돼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는 메소포타미아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우트나피시팀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비옥한 땅에 인구가 불어나고 세상은 날뛰는 황소처럼 울부짖으며 신들을 화나게 했다. 신들은 시끄러운 인간을 몰아내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우트나피시팀만 살리기로 하고 배를 만들게 명령한다. 이 신화가 적혀 있는 점토판 제작 시기는 기원전(BC) 7세기로 추정된다. 대홍수는 BC 19세기인 4,000년 전에 일어났고 이후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데우칼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홍수와 관련한 신이다. 그는 사람을 만든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이다. 제우스가 인류의 타락에 분노해 인류를 없애려고 대홍수를 일으켰다.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피라 두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그들은 아버지 프로메테우스의 가르침을 받아 배를 만들어 파르나소스산으로 피난했다. 홍수가 지난 뒤, 그들이 제물을 바치면서 인류를 되살릴 방법을 묻자 여신 테미스가 산 중턱의 돌멩이들을 등 뒤로 던지라는 지시를 내렸다.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되고 피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됐다. 그들의 장남은 그리스 민족(헬레네스)의 전설적 조상인 헬렌이다.
고고학 차원의 홍수 이야기는 인간종(種)의 발견과 관계한다. 최초의 인간 ‘루시’는 1974년 고고학자 도널드 조핸슨이 에티오피아의 하다르에서 발견했다. 몇 백 개의 뼈를 맞춰 330만 년 전 지구에 가장 오래된 인간종이 살았다고 추정한다. 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야로 불렸다. 인류는 2000년 에티오피아 디키아에서 세 살짜리 여자 아기(셀람)를 발굴했다. 그녀를 루시의 아기라고 불렀다. 루시보다 셀람이 더 어린 나이에 죽은 것으로 추정해서이다. 조핸슨이 루시의 뼈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홍수 덕분이었다. 발굴 작업을 할 때 홍수로 인해 협곡에서 부식된 토양에 붙어 있던 뼈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인류 4대 문명은 홍수의 혜택을 의미한다. 나일강,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 인더스강, 황하강 유역에서의 인류 문명 발생은 홍수 덕분이었다. 인류는 강물과 홍수가 가져다준 양분으로 비옥해진 땅에 정착해 농사를 지었다. 당시 사람들은 비로소 문명을 일궈낼 수 있었다. 나일강의 범람 시기는 인간이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 물이 많아져도 닿지 않는 쪽에 정착촌을 만들고 강물이 늘었다가 줄어들면 잠겼던 땅에 농사를 짓는다. 그러면 작물이 쑥쑥 잘 자란다. 7월에 작물을 수확하면 빈 농지에는 다시 홍수가 와서 지력을 보충해 준다. 사람들은 이제 홍수의 혜택보다 피해에 눈길을 준다. 양쯔강과 황하강의 예측불가한 범람은 큰 재앙이 됐다. 1931년 중국 대홍수로 최대 400만 명이 사망했다. 황하강에서만 1887년 최대 200만 명, 1938년 최대 100만 명, 1975년 23만 명이 사라졌다. 1935년 양쯔강 홍수로 14만5,000명이 죽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는 지중해성 기후로 비교적 건조하고 비가 많이 오지 않는다. 이런 건조한 날씨에도 가끔 대홍수가 미국 서부에 찾아온다. 1861년에서 186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발생한 대홍수는 최악이었다. 오리건주에서 시작한 비는 해를 넘겨 45일간 쉬지 않고 내렸다. 캘리포니아주 전체에서 수천 명이 죽고 농작물, 밭, 가축, 상점이 물에 잠겨버렸다. 당시 캘리포니아 전체인구는 40만 명, 지금의 1%에 불과했을 때의 일이다. 연간 강수량이 30cm에 불과한 로스앤젤레스(LA)에 겨울 동안 무려 160cm의 비가 내렸다. 시에라네바다산맥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센트럴 밸리에 고였다. 그 물이 빠지는 데 1년이 걸렸다. 센트럴 밸리는 호수가 되었다. 범람한 물이 지형을 바꾼 것이다. 미국이 겪은 초유의 사태였다. 샌트럴 밸리의 거대한 호수는 1년을 지속하다가 사라졌다. 홍수가 지나간 1862년 과세대상 토지의 3분의 1이 파괴됐다. 그해 캘리포니아주는 파산했다. 주의회는 18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주로 6, 7월에 발생하는 장마나 태풍이 동반한 호우로 홍수가 발생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최대풍속이 초속 17m 이상인 열대저기압을 태풍(Typhoon)이라 한다. 태풍은 흔히 북서태평양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북중미에서는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과 남반구에서는 사이클론(Cycloneㆍ토네이도를 동반한 열대폭풍)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사이클론 ‘다니엘’은 지중해 중부와 동부 지역을 강타했다. 리비아와 그리스, 튀르키예, 불가리아에서 엄청난 홍수와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혔다.
기후위기가 가속화하면서 미국 지구물리학회 학술지인 ‘지구의 미래’는 ‘100년 만에 한 번 일어날 수 있을 법한 홍수’를 매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205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평균 9~15년마다 유례없는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오싹하다. 이는 모두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한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세계은행(WB)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지구상에서 홍수에 노출된 주거지가 122% 늘었다고 발표했다. 도시화가 가속화하면서 인류의 주거 환경이 날로 홍수에 취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구에서 해안의 상당 부분이 영구적으로 침수돼 땅을 잃고 있다. 많은 해안 도시와 섬이 더 빈번하게 홍수를 겪고 있다. 실제로 방글라데시는 2022년 6월 몬순 우기로 대규모 폭우가 내려 122년 만에 최악의 홍수를 겪었다. 오랜 인류 문명 발생지가 번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화하는 것은 왜일까? 이 상황이 인류에 어떤 메시지를 남기는지 짚어봐야 한다. 자연의 기운을 거스르지 않고 더불어 사는 지혜가 인간에게 필요하다. 기후변화에 시급하게 대응하고 물길, 흙, 자연식생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도록 관리하는 데 지구촌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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