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 충청권 특자체 합추단 사무국장
최근 KBS는 ‘하드코어 서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극심한 수도권 집중 현상을 보도했는데, 일자리를 찾아 멀리서 상경한 청년들과 방학마다 대치동 학원가로 모이는 각 지역의 학생들, 서울의 대형 병원 근처에서 월세를 얻어 거주하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이었다. 인터뷰이들은 높은 월세와 물가 등 호락호락하지 않은 서울살이 고충을 토로하면서도, 결국엔 ‘서울’이라는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서울, 조금 더 나아가 수도권이라는 지역은 국토 면적의 10%에 불과한 지역이다. 그러나 과반의 인구가 집중된 탓에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그 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날로 치열해진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저출생도 그 결과물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악화하고 국가경쟁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오래전부터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수도권 집중화를 막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수도권 블랙홀’은 이 순간에도 인재와 돈을 빨아들이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국내 인구 감소 상황에서 수도권 인구는 지난해 증가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비수도권의 인구감소 추이를 볼 때,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현재 552만인 충청 인구는 100년 뒤 63만 명으로 쪼그라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지금까지 우리가 취했던 균형발전 정책을 보자. 중앙정부 ‘주도’ 아래 시·도 간 경쟁에 따른 공모사업 등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시·도 간 경쟁에 따른 갈등을 유발했고, 행정력 낭비라는 지적을 받았다. 문제가 생기자 결국 나눠 먹기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정부가 균형발전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거기에 중앙정부가 힘을 실어줘야 했지만, 모두 그러지 못했던 탓이다.
올해 예정된 충청권특별지방자치단체의 출범은 위와 같은 협력 거버넌스의 선두 주자로서 주목할 만하다. 대전 세종 충북 충남 등 충청권 4개 시·도가 자발적으로 수도권 집중화를 막고 충청권의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뭉쳤기 때문이다. 충청권특별지자체는 산업경제ㆍ인프라ㆍ사회문화 측면에서 다양한 협력사무를 발굴, 실행해 ‘충청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충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충청권의 발전을 위해 새롭게 설치되는 초광역 협력기구이다.
충청권특별지자체는 앞으로 지방소멸의 원인이 되는 인구유출·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 활성화를 위한 협력사무를 시작으로, 저출생 대응 정책·보육정책·청년정책 등 생애주기별 인구정책을 공동으로 추진해 ‘지속 가능한 충청’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정책 면면을 보면 이 협력 거버넌스는 지방정부가 더 이상 균형발전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지방소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곳곳에 녹아 있다. 그러나 아직 충청권만의 독자적인 자원으로는 이 협력의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데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행·재정적 권한이 중앙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화답할 차례다. 수도권 집중화에 맞서려는 시·도 간의 자발적인 협력이 있다면, 중앙정부는 이러한 협력 거버넌스에 권한을 과감하게 이양하고, 재정적인 자율성을 부여하는 등 대대적인 정책적 변화에 나서야 한다. 인구 552만의 특별지자체가 출범하면 국가균형발전 특별회계 내 충청권특별지자체 계정 신설과 특별지방행정기관 사무 이관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나서는 것이 한 예가 될 것이다.
내년이면 민선 자치 30년이 된다. 그동안 우리 지방정부는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중앙정부에 권한 이양을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이양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방에 힘을 실어주는 중앙정부가 되어야 했지만, 여전히 힘을 행사하는 중앙정부에 머무르고 있는 탓이다. 큰 도전에 나선 충청권특별지자체가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중앙정부로부터는 자율성을 얻어 균형발전의 선도모델이 되기를, ‘서울 대세’ 흐름을 트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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