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 추진체 결함, 기술적 후퇴"
누리호 쓴 '석유 추진제' 방식 처음 도입
국제사회 비판 의식, 러시아 조언 가능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 2분이면 충분했다. 27일 4번째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며 6개월 전 성공했던 발사체 대신 신형 로켓을 호기롭게 도입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연료 체계를 바꾸면서 오히려 엔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탓이 컸다.
사라진 '천리마'… 北, 석유 추진제 엔진 첫 적용
28일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전날 오후 10시 44분에 평안북도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쏘아 올린 군사정찰위성 2호기는 남서방으로 비행하다 2분 만에 공중 폭발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발사지점에서 수십㎞ 이내에 다수의 파편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지만, 현시점에선 1단 추진체가 폭발했다는 점에서 연소계통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영근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미사일센터장은 "의도적인 폭발이 아니라면 탱크, 밸브, 엔진 자체에서 연료와 산화제가 누출돼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 역시 실패를 곧바로 자인했다.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은 전날 발사 실패 직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새로 개발한 액체산소+석유발동기의 동작믿음성에 사고의 원인이 있는 것으로 초보적인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5월, 8월에 실패했을 땐 각각 2단 추진체 점화 실패, 3단 비행 중 비상 폭발(북한 주장)이 원인이었다"며 "반면 이번엔 초보적 기술인 1단 추진체에서 결함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6개월 전 성공이 의심될 정도의 기술적 후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발사체의 완성도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에 북한은 '천리마'라는 기존 발사체 이름도 언급하지 않았다. 위성체를 '만리경 1-1호'라고 명시하며 개량 사실을 숨기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주목할 부분은 새로 적용한 연료다. 로켓에 사용되는 추진제는 연료와 산화제의 결합으로 구성되며 액체, 고체, 하이브리드로 나뉜다. 액체추진제는 다시 △하이드라진 △석유 △액체수소의 3가지 방식으로 구분된다.
북한은 지금까지 하이드라진 추진제를 써 왔다. 독성 물질이 많아 주입 과정에서 오염·인명 피해가 발생, '더티 연료'로 불린다. 북한이 밝힌 새 엔진은 석유 추진제 방식으로, 북한이 이 연료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도로 정제된 등유(케로신)가 액체 산소와 섞이며 추력을 일으키는데, 우리나라 발사체인 '누리호'와 미국 스페이스X사의 팰컨 발사체도 이 방식을 사용한다.
ICBM 고도화 비판 회피 목적… 발사 서두르다 엔진 완성도 떨어진 듯
그렇다면 북한은 왜 성공했던 발사체를 포기하고 신형 엔진을 도입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한다.
먼저 ICBM 기술 사용에 대한 국제사회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한 모든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만일 북한이 한국의 '누리호', 미국의 스페이스X도 사용하는 발사체 기술을 적용한 것이라면, 이 같은 비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장 센터장은 "액체 산화제를 극저온 상태로 유지하면서 엔진에 주입하려면 수백억 원에 달하는 장비가 필요하고, 연료 주입에도 1시간 이상이 소요돼 한미 감시 자산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며 "그럼에도 북한이 연료를 바꾼 것은 고성능 발사체 개발과 탄도미사일 기술 고도화 의구심 제거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조언 및 기술 지원에 따른 결심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 역시 국제사회의 비판 및 경제 제재가 달갑지 않긴 매한가지다. 여기에 러시아는 이미 '앙가라 로켓' 등 석유 추진제 기술에서 미국과 함께 세계 정상급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에 엔진 체계 변경을 제안할 이유가 충분한 셈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석유 추진제 방식을 택한 것은 러시아 기술진의 자문이나 지원을 통해 전격적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미 작년부터 안전성이 높은 석유 추진제 방식으로 갈아탈 준비를 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발사 시점 연기가 엔진체계를 바꾸기 위함일 수도 있다. 당초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의 위성 발사 시점을 '4월 안'으로 예상했다. 다만 북한 입장에서 더 미루긴 힘들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외적으로 4년 만에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 6월부터 한 달간 한국이 유엔 안보리 의장국을 맡게 되는 계기로 영향력을 과시해야 했고, 대내적으로도 6월 예정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성과를 홍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즉 발사 일정을 꿰맞추다보니, 엔진 완성도를 끌어올리지 못한 채 발사체를 쏘아 올리는 우를 범했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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